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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7) 원산 광석동(廣石洞)교회
대담 :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 ․박에스더(탈북민)
-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원산 광석동(廣石洞)장로교회 이야기를 해 주시겠다고 했는데요, 원산은 전에는 함경남도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강원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원산은 기독교가 매우 왕성해서 ‘관북 제일의 기독교 도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1903년에 일어난 원산부흥운동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오늘 말씀드리려는 광석동교회는 그런 원산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이고,
원산을 ‘관북 제일의 기독교 도시’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교회입니다. 광석동교회를 ‘관북지방의 어머니교회’라고 말하지요.
광석동교회는 창전(倉前)교회라고도 했고, 창앞예배당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교회는 처음에는 게일(J. S. Gail) 선교사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원산항 바닷가에 있는
상평창(常平倉) 앞의 갈대밭을 사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상평창은 나라의 곡식창고입니다. 풍년 때 곡식을 사들여서 흉년이 들었을 때 팔 수 있도록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였습니다.
창고 앞에 세워졌기 때문에 창천교회, 또는 창앞예배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 광석동교회는 언제 세워졌습니까?
1893년에 세워졌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처음에는 게일 선교사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게일 선교사의 집은
‘예수집’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1899년에 상리(上里)의 갈대밭을 사서 예배당을 지었고, 1917년을 전후해서 광석동에 새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이 때부터 교회 이름이 광석동교회가 되었습니다.
광석동은 넓은 바위가 많기 때문에 광석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우리말로는 ‘너리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광석동교회를 ‘너리골 예배당’이라고도 했습니다.
<원산백화점의 모습>
- 광석동교회를 담임했었던 교역자들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초대 담임목사는 이미 여러 번 이름이 나왔는데 게일 선교사입니다.
게일 선교사는 한국 이름은 기일(奇一)인데 한국을 깊이 사랑하고 많은 일을 한 고마운 분입니다.
특히 한국의 문화를 깊이 사랑했지요.
그 다음에는 캐나다장로회 선교사들이 광석동교회를 담임했습니다.
푸트(W.R. Foote; 富斗一), 맥레이(McRae: 馬具禮), 그리슨(R.G. Grieson; 具禮善), 럽(A.F.Robb; 鄴亞力) 선교사 등이
담임했는데, 모두 이 시간에 한두 번씩 소개된 분들입니다.
1911년부터는 한국인 목사님들이 담임했는데 박예헌(朴禮獻)·김영제(金永濟)·이학봉(李學鳳)· 이승길(李承吉)·
김상권(金尙權)·정재면(鄭載冕)·권의봉(權義鳳) 목사님이 광석동교회를 담임했습니다.
박예헌 목사님은 재미 있는 일화를 남긴 분인데요, 이 분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해에 신학교에 입학해서
같은 해에 졸업했습니다. 아버지는 박정찬(朴楨燦) 목사님인데 부자가 평양신학교 3회 동기동창입니다.
부자가 같은 노회에 있었는데 아들 박예헌 목사님이 서기였습니다.
노회에서 출석을 부를 때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기 거북하니까 조그맣게 ‘아버지’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한 분이 ‘여기가 무슨 가족 모임이냐?’ 항의 발언을 하니까 박예헌 목사님이 당황해서
‘박정찬!’ ‘박정찬!’ 아버지의 이름을 두 번 불렀다고 합니다.
김영제 목사님과 이학봉 목사님에 대해서는 전에 한 번 말씀 드린 일이 있습니다.
이승길(李承吉) 목사님은 황해도 분인데 젊은 시절에는 김구(金九) 선생님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고,
옥고도 여러 번 겪었고, 교회에서도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김상권(金尙權) 목사님은 경상도 진주분인데 일본에서 공부를 여러 해 했고, 평양, 원산, 전남 순천 등 여러 지역에서
일한 분입니다. 이 분은 교단본부와 선교기관에서도 일했습니다.
정재면(鄭載冕) 목사님은 윤동주(尹東柱) 시인의 고향인 간도 명동촌(明東村)과 관계가 깊은 분입니다.
명동촌으로 이주한 분들이 학교를 세웠는데 가르칠 분이 없었습니다. 이 때 정재면이 명동촌에 왔는데
‘주민들이 모두 예수를 믿어야 교사로 일하겠다.’라는 조건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이 조건을 받아들여 명돈촌이 예수 잘 믿는 마을이 되고, 명동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재미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주민들이 처음에는 ‘아멘’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귀에 익은 ‘움메’라고 했다고 합니다.
정재면 목사님의 무덤은 지금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습니다.
명동교회는 복원이 되어 지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지요. 명동교회를 담임했던 분은 김약연(金躍淵) 목사님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이모부가 되는 분인데 당시 간도 지역에 살던 동포들의 대표적인 지도자였습니다. 별명이 ‘간도의 대통령’이었지요.
<명동촌교회 앞에 있는 김약연 목사 기념비. 성서 위에 세워져 있다. 오른쪽 상단 부분은 문화대혁명 때 깨졌다.>
권의봉(權義鳳)목사님은 경북 상주분인데 신앙문제 때문에 포항으로 옮겨서 살았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다음에는 광석동교회에서 설립한 석우동(石隅洞)교회를 담임했는데, 광석동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정재면 목사님이 일본 당국의 압력 때문에 사임을 하게 되어서 광석동교회와 석우동교회를 겸해서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니까 포항의 교인들이 ‘고향과 같은 포항에 오셔서 목회하십시오.’ 청했는데,
권 목사님은 ‘제가 섬기던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하고 계속 공산치하가 된 원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공산당에 반대하다가 함흥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공산군이 후퇴할 때 공산당은 수많은 수감자들을 니켈 탄광에 몰아넣고
학살했습니다. 권 목사님도 이 때 순교당했습니다.
<1928년 문재린 목사(문익환 목사의 부친)의 캐나다 유학 기념촬영.
앞줄 맨 왼쪽이 정재면 선생. 뒷줄 제일 왼쪽은 이권찬 목사>
- 광석동교회를 담임해서 수고한 교역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목사님, 지난 시간에 말씀하시기를 광석동교회는 인재를 많이 길러낸 교회라고 하셨는데 광석동교회가
배출한 인물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너무 많은 인물들을 길러내서 이 시간에 간단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함경도의 다른 교회 이야기를 할 때 광석동교회 출신 일꾼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올 것입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이호재(李好宰) 한 분의 이야기를 하지요. 이 분은 원래 승려였습니다.
안변에 석왕사(釋王寺)라 큰 절이 있는데 그 절의 주지였습니다. 게일 선교사가 석왕사 구경을 간 일이 있는데
이 때 그 절의 스님들에게 기독교에 대해서 잘 말해 주었습니다.
이호재도 그 가운데 있었는데 그는 10여 년 뒤에 주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지직을 포기하고 개종했고, 개종을 기념해서 많은 재산을 광석동교회에 기증했습니다.
이 재산이 아까 말씀 드린 석우동교회 개척설립, 광석동 새 교회당 건립, 신학생 장학금, 여러 면으로 유익하게 사용되었습니다.
- 그런 일이 있었군요. 광석동교회가 있었던 곳은 지금 행정구역으로는 어떻게 됩니까?
광석동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원산의 중심부로서 원산항과 강원선철로 사이에 있는 곳인데 강원선은 평강군에서 고원군을 연결하는 철로입니다.
광석동 앞이 창앞예배당이 있었던 상동입니다.
광석동교회는 게일 선교사의 집에서 시작되었는데 게일 선교사의 집은 있었던 봉수동(烽燧洞)에 있었습니다.
봉수동은 원산 중심부에서 서북쪽으로 40리쯤 떨어진 곳입니다. 원산 중심부와 송도원 해수욕장 사이이지요.
<원산 송도원 호텔과 북한의 송도원 해수요장. 송도원은 북한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 오늘 원산에 있었던 광석동교회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어느 교회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함경북도 청진에 있었던 청진감리교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청진감리교회라고 하셨는데, 함경북도는 장로교 선교구역으로서 감리교회는 없던 곳이 아닙니까?
저도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감리교 목사님 한 분이 청진에서 목회한 할아버지의 자료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청진 일대에 감리교회가 최소한 다섯 개가 있었더군요.
- 그 목사님처럼, 해방 이전 북한에 있었던 교회들의 자료를 서로 나누어서 한국교회가 공유(共有)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쥬빌리유니 닷 컴’이 그런 것을 중계하는 역할도 하게 되기 바랍니다.
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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