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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운산읍(雲山邑)감리교회(평북)
-금광으로 유명한 곳에 세워진 교회-

대담 :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박에스터(탈북민)


 

 

-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평안북도 운산군에 있었던 운산읍감리교회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요,

   먼저 운산군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것과 또 조사한 것을 합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운산은 고려 때에는 운주(雲州)라고 하다가 조선왕조 때 운산이 되었습니다.

   산이 많아서 ‘산’자를 붙였다고 하는군요.

   운산은 예전에 금광으로 유명했습니다.

   1895년에 모스(J. R. Moris)라는 미국인이 조선정부와 금광채굴협약을 맺어서 동양합동광업회사라는 회사를 세우고

   금을 캤다고 합니다.

   약 40년 동안 9백만 톤의 금을 캐서 1억 5천만 달러의 순이익을 벌어들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04 운산읍감리교회(평북) - 운산군 지도.jpg

   <운산군 지도>

 

   운산금광 때문에 재미 있는 말이 하나 생겼다고 하지요.

   큰 광맥을 찾았거나 이익이 되는 일을 ‘노다지’라고 하는데 이 말이 운산금광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금이 들어있는 광석이 나오면 미국인들이 ‘손대지 말라’는 뜻으로 ‘노 터치(No Touch)!’라고 했는데

   한국광부들이 이 말을 ‘아, 금광석을 노다지라고 하는구나!’ 잘못 알아들었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 금광 때문에 운산에는 기독교가 일찍 들어갔습니다.

   금광에서 일하는 미국인들이 예배를 드렸는데 그 영향이 한국인들에게도 미쳤거든요.

 

   운산에 들어간 것은 감리교였습니다.

   운산을 보통 ‘평안북도 감리교 선교의 시발점’이라고 부릅니다,

   감리교의 문서에 1901년부타 운산지방 이야기가 나오는데 

   1901년 감리교 연례보고서를 보면 운산에 33명의 교인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903년 보고서를 보면 1903년 보고에 운산교회는 3칸이었는데 그 가격은 207냥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옛날의 ‘칸〔間〕이  어느 정도 넓이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여러 기록을 참고해 보면 대개 1.7평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섯 평 조금 넘는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감리교는 교회들이 몇 모이면 ‘구역’이 되는데 운산읍감리교회는 처음에는 평양순회구역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영변순회구역에 속했고, 1903년에 운산 구역으로 독립했습니다.

 

   104 운산읍감리교회(평북) - 운산금광.jpg

   <운산금광의 모습>

 

 

-  그러니까 운산읍감리교회는 110여 년 전에 설립된 교회이네요.

   운산읍감리교회를 담임했었던 교역자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모리스(C. D. Morris 慕理是) 선교사가 담당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모리스 선교사는 감리교의 북한지역 전체를 책임 맡고 있었으니까요.

   모리스 선교사는 조상은 프랑스인이고, 그 자신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입니다.

   1901년에 한국에 와서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도 지역을 순회하면서 전도했습니다.

   아까 말씀해 주신 것과 같이 운산은 첩첩산중이어서 순회하기가 쉽지 않은 곳인데 모리스 선교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모리스 선교사는  평안도 지역을 깊이 사랑한 선교사였습니다.  

   1916년에는 임지를 강원도 원주로 옮겼는데 1925년, 한국선교 25주년 기념식은 평안도 영변에서 가졌습니다.

   선교25주년 기념식을 가진 다음 해 말에 강원도 동해안 일대 전도여행에 나섰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1927년 초에 세브란스 병원에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분이군요.

   그 다음에는 어떤 분이 담임하셨나요?

 

   1906년부터 1908년까지는 박영찬(朴永瓚) 전도인이 운산읍감리교회를 지도했습니다.

   박영찬 전도인은 1912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운산을 비롯해서 희천, 태천 등 평안북도 지역에서 주로 사역했습니다.

   한 때는 황해도에서도 일하셨지요.

   박영찬 목사님은 1920년부터 3년간 다시 운산교회를 담임하셨습니다.

 

   1909년 담임자는 김창식(金昌植) 목사님이었습니다.

   김창식 목사님은 감리교에서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분이지요.

   이때 김창식 목사님은 영변지방 감리사로 영변 일대의 여러 교회를 돌보셨습니다.

 

   104 운산읍감리교회(평북) - 김창식 목사.jpg

   <1909년 영변지방 감리사로 운산읍감리교회를 담임했던 김창식 목사. ‘조선의 바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910년부터 몇 해는 담임자가 없었고, 1913년에 이화백(李華伯)전도사님이 부임했습니다.

   이화백 전도사님은 1917년에 목사 안수를 받으셨습니다.

 

   1914년부터 3년 간의 이윤영(李允榮) 전도사님이 담임했습니다.

   이윤영 목사님은 해방 후에는 정치계에 투신해서 초대 국회의원으로 제헌국회가 개원할 때 기도를 하셨고,

   국무총리 서리도 지내신 분입니다.

 

   104 운산읍감리교회(평북) - 이윤영 목사.jpg

   <1914년〜1916년 운산읍감리교회를 담임했던 이윤영 목사>

 

   1917년부터는 강신화(康信華) 목사님이 담임하셨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는 먼저 아까 말씀 드린 박영찬 목사님, 그 다음에는 최창신(崔昌信) 목사님,

   그다음에는 박창빈 목사님, 그 다음에는 오인근 목사님이 담임했습니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정봉익(鄭奉益) 목사님에 이어 유종학(劉鐘鶴) 전도사님이 담임하셨습니다.

   유종학 목사님은 6․25 전쟁 때 공산군에 의해 순교 당하셨습니다.

   해방 뒤에는 양준택 전도사님이 운산읍감리교회를 담임했습니다.

 

 

- 운산읍감리교회는 역사가 오래기도 하지만 여러 분의 교역자가 담임하셨네요.

 

   당시 감리교회는 파송제였습니다.

   2년 단위로 교역자가 새로 파송을 받게 되어 있었지요.

   아까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중간 중간에 ‘미파’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사정이 있어서 교역자를 파송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감리교는 당시 중부연회, 서부연회, 동부연회, 3개 연회가 있었는데

   연회록들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교역자 파송기록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장로교회의 경우는 노회록을 보아야 하는데 북한지역에 노회들이 많았고,

   노회록들이 분산되어 있어서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  잘 알았습니다.

   운산읍감리교회의 주소와 그곳이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운산읍감리교회의 당시 주소는 평안북도 운산군 운산면 읍내동 30번지였습니다.

   1938년 당시 운산읍감리교회는 22평 규모의 목조함석예배당과 13평 규모의 목사주택,

   역시 13평 규모의 전도부인 주택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교회유지를 위한 논과 밭, 그리고 임야를 여러 필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평안북도 운산군 구읍리(舊邑里)입니다.

   운산읍감리교회가 있었던 읍내동은 예전 운산군의 중심부였는데

   온정리가 운산군의 새로운 읍이 되고 예전의 중심부는 구읍리가 되었습니다.

 

   조양강(朝陽江)이 흐르는 곳인데요, 조양강은 삼탄천이라고도 합니다.

   읍내동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마을 이름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성황당이 있었고, 효부비(孝婦碑)와 한천사 오현당이라는 유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성황당은 철거되었을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북한은 성황당을 봉건시대의 유물로 보니까요.

 

   104 운산읍감리교회(평북) - 운산군 옥수수밭.jpg

   <2013년 7월에 내린 큰 비로 운산군의 옥수수밭이 물에 잠겨있다.

     독일의 NGO인 벨트훙게르힐페(Weltungerhilfe)는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기술자들을 파견,

     110가구의 주택을 새로 건축해 주었다.>

 

 

-  북한에서는 종교를 반대하기 위해 만든 ‘성황당’이라는 유명한 연극이 있습니다.

   TV에서도 자주 방영했는데 저도 여러 번 보았지요.

   오늘 운산읍감리교회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다음 번에는 어느 교회를 찾게 될까요?

 

   오늘은 평안북도에 있었던 감리교회를 찾았는데 다음 번에는 평안북도에 있었던 장로교회를 찾으려고 합니다.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에 있었던 곽산(郭山)장로교회로 가겠습니다.

   지난 번에 민족운동으로 유명한 원장교회를 찾았었는데 곽산교회 역시 민족운동에 앞장 섰던 교회입니다.

 

 

-  곽산은 지금은 군이 되었는데요, 다음 번 순서를 기대하겠습니다.

   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 이 내용에 대해 수정할 것이 있다고 여겨지거나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거나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는 분은 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 찾고 싶은 교회가 있는 분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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