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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홀동(笏洞)교회(황해도 수안군)
-금광에서 시작된 교회-

대담 :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박에스터(탈북민)


 

 

-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황폐한 성소에 빛을”, 이번에는 강원도 수안군에 있었던 홀동교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다고 하셨지요.

   수안군은 황해북도 북동부 내륙지방에 있는데, ‘수안(遂安)’이라는 이름을 풀면 ‘안전함을 이룬다’가 됩니다.

   산세가 험해서 외적의 침입을 받을 염려가 적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옥수수가 많이 생산되고, 오리를 많이 기르고,  가죽장갑과 가죽허리띠, 가죽신발을 많이 생산하는 곳이라고 되어 있네요.

 

   수안군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조사해서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홀동교회는 수안군 수구면(水口面) 보광리(寶光里)에 있었는데

   북한이 1952년에 행정구역 개편을 실시할 때 수안군의 북부지역을 떼어 연산군(延山郡)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홀동교회가 있었던 지역도 연산군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107 홀도교회(황해도 수안군) - 황해북도지도-1.jpg

   <황해북도 지도>

 

 

- 지금 홀동교회가 수안군 수구면 보광리에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홀동’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보광리의 옛 이름이 홀동입니다.

   ‘홀(笏)’은 조선왕조 때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 조복(朝服)을 갖추어 입고 손에 쥐던 패를 말하는데

   옛날에 임금을 따라 왔던 어떤 관리가 그만 홀을 여기에 두고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홀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곳에는 금광이 있습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해방 직전에 홀동금광의 금을 진남포의 제련소에 운반하는 사업을 했지요.

   6․25 전쟁 후에는 국군포로 여러 명이 홀동광산에서 강제노동을 했다고 합니다.

 

   홀동은 ‘보물이 빛을 발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보광리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보광리는 다시 보석리(寶石里)가 되었다가 이 지역을 로동자구로 승격시킬 때

   옛 이름을 찾아 ‘홀동로동자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홀동로동자구에 있는 홀동광산은 북한의 대표적인 금광 가운데 하나이지요.

   우리가 운산감리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미국인들이 운산금광의 채굴권을 인수해서 큰 수익을 올렸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홀동광산도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이 채굴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07 홀도교회(황해도 수안군) - 홀동로농자구 아파트-1.jpg

   <홀동로동자구의 아파트 단지>

 

 

-  아, 그렇군요.

   홀동교회는 언제 설립되었습니까?

 

   1916년 겨울에 설립되었습니다.

 

   백여배(白汝培)라는 평양의 기독교 신자 6, 7명과 함께 홀동에 와서 금광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광산의 주인이 주일에도 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백여배는 매일 밤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바꿔서 주일에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주인이 마음을 바꿔서 주일에는 일을 쉬고  예배를 드려도 좋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백여배와 그의 친구들은 석건리(石建里)라는 곳에 있는 집을 빌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설립된 교회가 홀동교회입니다.

 

 

-  석건리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면 교회 이름이 ‘석건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 네, 그 때  여러 곳에서 교인들이 금광에 왔는데 백여배와 친구들의 영향으로 주일을 지키지 않던 사람들이

   주일을 지키고, 돈을 버는 일이라면 거짓말도 서슴치 않던 이들이 정직한 생활을 하니까,

   교회가 날로 부흥해서 한 달 만에 석건동에서 홀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홀동으로 이사한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교인이 7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때 교회가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습니다.

   이들은 힘써 연보하여 예배당을 매입했고, 1911년 6월에는 학교도 설립하였습니다.

 

 

-  홀동교회를 담임했었던 교역자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초기에는 홀로크로프토(J. G. Holdcroft: 許大殿)선교사가 홀동교회를 지도했습니다.

   홀로크로프토 선교사는 1909년에 한국에 왔는데 교육사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한국교회의 주일학교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전국주일학교연합회 총무로 오랫동안 수고했지요.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미국북장로회는 홀로크로프토 선교사와 솔타우(T. S. Soltau: 蘇悅道),

   로드(H. S. Rhodes: 盧解理) 선교사에게 이 문제의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이들은 우상을 섬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홀로크로프트 선교사는 해방 뒤에 고려신학교가 설립되는 일과 고신파가 출범하는 일에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홀로크로프트 선교사가 홀동교회를 지도하고 있을 때 조사로 그를 도운 분이 최선탁(崔善鐸)입니다.

   최선탁은 홀동교회 조사생활을 하면서 평양장로회신학교에 다녀,

   1913년에 제5회로 졸업을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황해도 수안군 일대에서 옥연동(玉蓮洞)교회,

   흥동(興洞)교회를 담임해서 목회하다가 중국 동북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최 목사님은 간도 일대, 지금 연변지역에서  목회하시다가 그곳에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홀동교회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1913년 8월에 최원탁(崔元鐸)이 영수로 시무하다’는 것이 있는데

   최원탁 목사님과 최원탁 영수가 어떤 관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형제, 또는 사촌 간이 아닌가 짐작되기도 합니다.

 

 

-  그 다음에는 어느 목사님이 시무하셨습니까?

 

   1915년 11월에 전관일(全觀一)목사님이 부임하셨습니다. 

   전관일 목사님은 1915년에 제8회로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홀동교회를 비롯하여

   수안군과 곡산군의 여러 교회를 담임하셨던 분입니다.

   그 뒤의 담임자들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홀동교회의 주소와 그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이미 말씀해 주셨는데요,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옛 주소는 황해도 수안군 수구면 보광리이고,

   현재의 행정구역은 황해북도 연산군 홀동로동자구입니다.

   맞지요?

 

   맞습니다.

   연산군의 동부 지역인제 남쪽으로는 높이 1,120미터의 언진산(彦眞山 )이 있고 홀동천이라는 냇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107 홀도교회(황해도 수안군) - 언진산맥 모형(울산식물원테마파크)-1.jpg

   107 홀도교회(황해도 수안군) - 언진산맥 지도.jpg

   <위는 남한의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울산테마식물수목원에 만들어진 언진산맥의 모형. 아래는 언진산맥의 지도>

 

 

-  네, 홀동광산의 광부들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던 홀동교회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다음 번에는 어느 교회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평안남도 준화군에 있었던 대기암(大奇岩)교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2013년 11월에 세상을 떠난 채명신(蔡命新) 장군을 잘 아실 텐데 그분은 독실한 신앙인으로 장로님이셨죠.

   대기암교회는 채명신 장군의 집안과 관계가 있는 교회입니다.

 

 

-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네요.

   다음 순서를 기다리겠습니다.

   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 이 내용에 대해 수정할 것이 있다고 여겨지거나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거나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는 분은 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 찾고 싶은 교회가 있는 분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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