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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대기암(大奇岩)교회(평남 중화군)
-채명신 장군의 외조부가 세운 교회-

대담 :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박에스터(탈북민)


 

 

-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평안남도 중화군에 있었던 대기암교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요,

   이 ‘황폐한 성소에 빛을’에 중화군에 있었던 교회들 가운데 여러 교회들을 이미 소개한  기억이 납니다.

   사룡리교회(35번), 중화읍교회(66번), 건산리교회(75번) 등인데요,

   중화군에 있었던 교회들이 이렇게 여럿 여기에 소개 되었다는 것은 중화군에 교회들이 많았고,

   그 교회들이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중화군이 어떤 곳인가?’ 하는 것을 알려면 앞에서 말씀드린 교회 편을 찾아보면 되겠습니다.

   ‘대기암교회’라는 이름은 교회가 있었던 곳의 지역 이름을 딴 것이겠지요?

 

   108 대기암교회(평남중화군) - 평안남도 예전지도.jpg

   <예전 평안남도 지도>

 

   그렇습니다.

   대기암교회는 중화군 신흥면(新興面) 대기암리에 있었습니다.

   대기암리라는 이름은 마을에 물이 솟아나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  대기암교회는 언제 세워졌습니까?

 

   1896년에 세워졌습니다.

   대기암리의 박진준(朴鎭俊)을 비롯하여 주민 여섯 명이 처음으로 예수를 믿고

   박진준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해서 대기암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들은 얼마 안 있어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날로 부흥했습니다.

 

   장로교 초기 역사기록 가운데 하나인 「평양노회 지경 각 교회사기」를 보면

   “1899년 중화군 군수 이완용(李完用)과 부호들이 교회를 배척하여 핍박이 크게 일어났으나

   오히려 새로 들어오는 교인들이 구름처럼 일어나서 신자가 힘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이완용이라고 하면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긴 사람 아닙니까?

 

   대기암교회를 핍박한 이완용이 그 이완용일 가능성이 높은데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이완용은 1896년에 친러시아 세력이 득세할 때 외부대신, 학부대신,

   농상공부대신서리 등을 지내다가 1897년에는 세력을 잃고 평안남도관찰사가 되었습니다.

   「평양노회 지경 각 교회사기」를 기록한 분이 ‘평안남도 관찰사 이완용이 대기암교회를 핍박했다’고 적어야 할 것을,

   ‘중화군 군수 이완용’이라고 잘못 적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대기암교회는 박진준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렸는데,

   박진준은 1903년에 대기암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박진준 장로는 토지를 교회에 기부하여 300여 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당을 건립하고 교회를 잘 이끌었습니다.

   이 박진준 장로가 2013년 11월에 세상을 떠난 채명신(蔡命新) 장군의 외조부입니다.

 

   채명신 장군은 주월한국군 사령관을 지냈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나를 월남에서 전사한 사병들의 묘역에 묻어다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유언이 그대로 집행이 되어서 채명신 장군은 사병 묘역에 묻힌 최초의 장군이 되었습니다.

   채명신 장군은 외가의 신앙을 이어받아 평생을 독실한 신앙인으로 지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이셨지요.

 

   어릴 때는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을 겪으면서 신앙의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를 막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월남해서 군인의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108 대기암교회(평남중화군) - 채명신 장군.jpg

   <주월한국군사령관 시절 월남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채명신 장군>

 

   대기암교회는 1905년에 소룡리(小龍里)와 성천리(城川里)에 지교회를 설립하고, 1906년에는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 때 교회가 부흥하는 모습이 「평양노회 지경 각 교회사기」에는 이렇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10년부터 1912년에 이르기 까지 교회는 더욱 왕성하며 박진준, 김영화(金永華)는 토지를 교회에 기부하여

   발전하기를 힘쓰며 일반교인은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아 주를 독실하게 믿으니 교회가 날로 진흥하더라

   1913년에 교인의 수가 증가하여 200여 명에 달하니라

   그 후 교회는 의연히 장성하다.

 

 

-  마음을 참 흐뭇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는 교회가 침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러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교인이 70명으로 줄어들었고, 학교도 폐지되었습니다.

   3․1운동으로 인해 교회가 더 약해졌고, 교회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진준 장로가 신병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고,

   교인들 가운데는 타락하는 이도 있어서, 한 때는 교인이 3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가 성인 70명,

   아동 65명으로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  그것은 참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대기암교회를 담임했던 교역자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초기에는 그라함 리 선교사가 교회를 지도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조사들이 교회를 이끌었는데요, 1904년에는 채정민(蔡廷敏)이 조사로 시무했습니다.

   채정민은 뒤에 목사가 되었는데 채정민 목사님에 대해서는 이 ‘황폐한 성소에 빛을’에서 여러 번 말씀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1914년부터는 오능조(吳能祚)가 조사로 시무했습니다.

   오능조는 오학수(吳學洙), 오순근(吳淳根), 이렇게  이름이 여럿입니다.

   중화군에서 출생했는데 평양장로회신학교에 다닐 때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안도의 만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 뒤에 중국으로 가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목사 안수도 남만노회에서 받았고 중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08 대기암교회(평남중화군) - 임시정부 성립축하문-1.jpg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축하문(1919년 10월 31일 발표).

     민족대표 30인 명단에 오능조 목사의 이름이 보인다(둘째줄 제일 위)>

 

   1921년에 최원탁(崔元鐸)이 조사로 시무했는데

   최원탁에 대해서는 지난 번 황해도 수안군에 있었던 홀동(笏洞)교회에 대해 말할 때 소개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그 뒤에 장재석(張在石) 전도사가 부임했습니다.

 

 

-  대기암교회의 주소가 평안남도 중화군 신흥면 대기암리라고 하셨는데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어떻게 됩니까?

 

   평양시 강남군 상암리(上岩里)입니다.

   1952년에 북한이 행정구역을 크게 개편할 때 대기암리가 강남군에 편입되었고,

   주변의 여러 리와 합해 이름이 상암리가 되었습니다.

   대기암마을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강남군은 평양시에 속해 있다가 황해북도로 이관되었는데 다시 평양시로 편입되었습니다.

 

   강남군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남포시를 바라보고 있는 곳인데 상암리는 강남군의 동부 농경지역입니다.

   대기암교회는 장로교 평양노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108 대기암교회(평남중화군) - 평양 행정구역 지도(강남구 위치).jpg

   <강남군의 위치>

 

 

-  오늘 과거의 중화군, 현재는 평양 강남군에 있었던 대기암교회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다음 차례는 어디인가요?

 

   내금강(內金剛)감리교회를 찾겠습니다.

   내금강감리교회는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에 있었습니다.

 

 

-  금강산에 있었던 교회라 더 관심을 갖게 되네요.

   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 이 내용에 대해 수정할 것이 있다고 여겨지거나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거나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는 분은 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 찾고 싶은 교회가 있는 분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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