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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2) 재령(載寧)중앙교회(황해도)
-일제강점기말에 태어나서 해방 직전에 문을 닫은 비운의 교회-

대담 :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박에스터(탈북민)


 

 

-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황해도 재령군에 있었던 재령중앙교회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요,

   퍽 오래 전에 재령에 있었던 재령동부교회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0015),

   그 때 말씀해 주신 것을 찾아보니까 재령은 농경지가 많은 곳으로서, 북률미(北栗米)라는 품질 좋은 쌀이 생산되고,

   복숭아가 유명하고,  천주교가 아주 강했던 곳이고, 그리고 장로교 선교사들이 여러 분 활동했던 곳이라고 알려주셨더군요.

 

   112 재령중앙교회(황해) - 재령군 협동농장.jpg

   <재령군의 협동농장에서 거름을 운반하는 트럭들.  김정은이 2014년 신년사에서 농업을 강조하자 평야지대로서

     중요곡물생산기지인 재령의 주민들이 바빠졌다. 사진은 「로동신문」에 실린 것임>

 

   재령은 개신교, 특히 장로교가 매우 왕성했었던 곳입니다.

   재령에는 미 북장로교의 선교기지가 세워져서 장로교의 황해도 선교에 있어서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재령에는 재령동부교회를 비롯해서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재령동부교회의 처음 이름은 재령읍교회였지요. 

   재령에는 교회에서 세운 명신(明新)학교와 제중병원이 있었고, 재령성경학교가 있어서 교역자를 양성했습니다.

 

   1920년대에 천도교에서 발행하던 「개벽」이라는 월간지가 있었는데 이 잡지에

   ‘재령에서는 모든 것이 기독교가 중심이다. 재령은 기독교 천하이다’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기독교가 강했습니다.

 

   112 재령중앙교회(황해) - 개벽표지.jpg

   <「개벽」표지>

 

 

-  재령을 비롯해서 북한 전역에서 교회들이 그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날이 속히 다시 왔으면 좋겠습니다.

   재령중앙교회는 언제 설립되었습니까?

 

   일제 강점기 말이라고 할 수 있는 193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매우 늦게 설립된 편이지요.

   재령의 동부지역에는 재령동부교회가 있었고, 서부지역에는 재령서부교회가 있었는데 중부지역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북장로교 재령선교기지를 책임지고 있던 헌트(W.B. Hunt; 韓緯廉)선교사가 중부지역에도 교회가 있어야하겠다고
   생각하고 동부교회와 서부교회의 양해를 구한 다음에 일신리(日新里)에 가옥을 매입하고 예배당으로 개조하여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1938년은 잘 아시는 것과 같이 신사참배를 가결한 27차 총회가 열린 해입니다.

 

   한국교회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서,

   있던 교회 가운데에도 문을 닫는 교회들이 생기고 있었는데 새로운 교회가 설립된 것입니다.

   재령중앙교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서 교인이 수백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12 재령중앙교회(황해) - 재령주앙교회 여름성경학교-1.jpg

   <재령중앙교회 여름성경학교 사진. 이천에 있는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재령중앙교회를 담임했었던 교역자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헌트 선교사가 수고했습니다.

   헌트 선교사는 ‘재령 선교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헌트 선교사의 아들은 부르스 헌트(Bruce F. Hunt; 韓富善)인데 이 분은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분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선교사가 되어 한국에 와서 청주를 중심으로 농촌선교에 힘썼습니다. 

 

   이 분은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을 섰는데

   신사참배를 가결한 27차 총회에서 유일하게 반대발언을 하며 항의하다가 강제로 끌려 나갔습니다.

   그 뒤 중국 동북지역으로 가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계속하다가 일제에 의해 옥고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강제추방 당했지요.

   해방 후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고려신학파 운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은퇴하여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112 재령중앙교회(황해) - 한부선 선교사 가족.jpg

   <재령선교의 아버지 한위렴 선교사의 아들 한부선 선교사 내외. 한국말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재령중앙교회의 초대 담임자는 홍순택(洪淳澤) 목사님입니다.

   홍순택 목사님은 주일학교, 성가대, 남녀전도회, 청년회 등을 조직하고 전도에 힘쓰면서 교회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황상호(黃尙浩)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재령중앙교회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  어떤 어려움인가요?

 

   일본 당국은 1942년에 한국의 각 교파를 없애고

   한국교회를 ‘일본기독교단 조선교단’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일본교회 밑에 예속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8월에는 예배당들을 폐합하여 예배당 숫자를 줄였습니다.

   재령중앙교회는 이 때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재령동부교회와 서부교회로 흡수되었지요.

 

   해방이 되었을 때 문을 닫았던 교회들은 대부분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재령중앙교회는 다시 문을 열지 못한 상태에서 공산당의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교인들은 대부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하였지요.

 

 

-  재령중앙교회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세워져서 해방 직전에 문을 닫은,

   그러니까 7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비운의 교회’라고 해야 하겠군요.

   재령중앙교회의 주소와 그곳이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재령중앙교회가 처음 세워진 곳은 아까 말씀 드린 것과 같이 황해도 재령군 재령면 일신리였습니다.

   일신리는 ‘날로 번성하는 새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재령중앙교회가 세워진 해인 1938년에 나온  장로교 주소록에는 

   재령중앙교회의 주소가 재령군 재령면 남정리(楠亭里)로 되어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楠)’은 들메나무라는 뜻인데 들메나무정자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신리와 남정리의 현행 행정구역은 모두 황해남도 재령군 재령읍입니다.

   은파역과 은율역을 연결하는 은율선(殷栗線)이 이곳을 통과합니다.

 

   112 재령중앙교회(황해) - 재령군 지도.jpg

   <재령군 지도>

 

 

-  네, 오늘 재령중앙교회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다음 번에는 어느 교회의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평안남도 대동군에 있었던 유신리(柳新里)감리교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  평안남도 대동군에는 장로교회들만 있었는 줄 알았더니 감리교회도 있었네요.

   다음 순서가 기다려집니다.

   목사님, 수고 많았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이 내용에 대해 수정할 것이 있다고 여겨지거나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거나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는 분은 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 찾고 싶은 교회가 있는 분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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