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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4) 선천(宣川)의 재건교회들(평북)
-신사참배 한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던 교회들-

대담 :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박에스터(탈북민)


 

-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선천의 재건교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요,

   “황폐한 성소에 빛을” 여기에는 장로교회들이 많이 소개되고, 그 다음에는 감리교회, 그 다음에는 성결교회,

   그리고 침례교회가 지방별로 묶어서 소개되었고, 또 구세군, 성공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교파에 속한 교회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재건교회’라는 교파는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재건교회라는 교파는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건교회는 해방 이후에 설립된 교파입니다.

   이 “황폐한 성소에 빛을”에는 주로 해방 이전에 북한 지역에 있었던 교회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해방 이후에 설립된 교파에 속한 교회는 처음 소개됩니다.

   지금 제가 ‘해방 이전에 북한 지역에 있었던 교회들’이라고 했는데

   이 교회들도 엄밀하게 말하면 6․25 전쟁 이전까지는 존속해 있었습니다.

   재건교회의 뿌리는 장로교회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일본 당국이 신사참배를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교역자들은 모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숫자가 70명이 넘었지요. 이기선(李基宣) 목사님, 주기철(朱基徹)목사님,  손양원(孫良源) 목사님….

   이 분들은 감옥에 있을 때부터 ‘앞으로 일본이 패망하면 한국교회는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하는 것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자 이들은 감옥에서 나와 한국교회 재건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재건운동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재건운동에 반발하는 분들도 있었고, 재건운동을 하는 분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강한 의견을 가진 분들, ‘신사참배를 한 기성교회들은 타락하고 구제불능의 교회다.

   새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분들이 만든 교회를 재건교회라고 부릅니다.

 

   114 선천의재건교회들 - 최덕지전도사.jpg

   <신사참배 반대로 옥살이를 하다가 출옥한 출옥성도들. 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키 큰 분이 김인희 전도사님.

     제일 왼쪽은 후일 남한지역 재건교회 운동을 이끈 최덕지 전도사님. 그 옆은 이기선 목사님>

 

 

-  재건교회는 구체적으로 언제 시작되었나요?

 

   해방 직후부터 재건교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1946년 1월 초에 철산(鐵山)의 차련관(車輦館)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서 설립준비가 구체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차련관교회에 대해서는 이 “황폐한 성소에 빛을” 시간에 소개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090번).

   차련관교회에서 열린 부흥회는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하는 눈물의 집회였습니다.

   차련관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 이어서,

   1946년 4월에 선천 황금동에 있는 미곡창고에서 재건교회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재건교회가 공식으로 출발했습니다.

   미곡창고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재건교회를 ‘곡간교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차련관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의 강사였고, 재건교회 창립예배에서 설교를 한 분은 김인희(金麟熙) 전도사님이었습니다.

   이 김인희 전도사님이 북한지역 재건교회 운동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4 선천의재건교회들 - 차련관교회.jpg

   <눈물의 회개 부흥회가 열렸던 차련관교회>

 

 

-  김인희 전도사님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름만 보아서는 여자로 알기 쉬운데 남자입니다.

   선천 출신으로 평양장로회신학교에 다니다가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장로회 신학교가 문을 닫자

   신사참배 거부운동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김인희 전도사님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에서 15년 형을 언도 받았는데

   이것을 보아도 그가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옥중에서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하여 신사참배 반대 운동가들과 함께 옥고를 겪다가 해방이 되어

   감옥에서 나와 재건교회운동에 앞장 섰습니다.

   김인희 전도사님의 활동을 통해 북한지역에 67개의 재건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재건교회는 북한공산정권으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김인희 전도사님은 1947년에 월남해서 남한지역에서 재건교회 운동을 벌이다가 6․25 전쟁 때  납북되어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김인희 전도사님은 사진을 거의 남기지 않은 분으로 유명합니다.

 

 

-  왜 사진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일제는 천황의 사진에 절을 하게 했거든요.

   김인희 전도사님은 절대로 천황의 사진에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생활을 할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 때문에 고통을 많이 겪었지요.

   그 때문에 김 전도사님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합니다.

 

 

-  아주 철저한 분이었군요.

 

   그렇지요.

   너무 철저해서 물의가 많이 일어나기도 했고, 교회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충현교회를 담임하셨던 김창인(金昌仁) 목사님은 원래 김인희 전도사님과 함께 재건교회 운동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전도사님이 교회를 이끄는 방식이 너무 권위적이라고 여겨져서 김 전도사님과 결별하셨지요.

 

   114 선천의재건교회들 - 김창인 목사.jpg

   <고 김창인 목사님. 김인희 전도사님과 동역하며 장충단재건교회를 담임했으나

     갈라져서 고신파를 거쳐 합동측에 속해 충현교회를 설립했다>

 

 

-  오늘 이야기의 제목이 ‘선천의 재건교회들’인데 선천은 교회가 강했던 곳으로 유명하지요.

   동시에 재건교회운동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천에는 재건교회가 몇 개가 있었습니까?

 

   114 선천의재건교회들 - 신천군.jpg

   <선천군 지도>

 

   다섯 개가 있었습니다.

   먼저 선천읍 황금동에는 선천재건교회가 있었습니다.

   선천재건교회의 담임 교역자는 문정상(文貞祥), 위령원이었습니다.

   이 황금동의 현재 행정구역이 어떻게 되는지는 파악이 괴지 않습니다.

 

   선천군 심천면(深川面) 동림리에는 동림(東林)재건교회가 있었습니다.

   동침재건교회가 있었던 심천면 동림리의 현재 행정구역은 평안북도 동림군 고군영리(古軍營里)입니다.

   북한은 1952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선천군의 동쪽을 떼어서 동림군을 신설했습니다.

 

   선천의 수청면(水淸面) 학현리에는 학현(鶴峴)재건교회가 있었습니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동림군 청송리(靑松里)입니다.

 

   선천군 태산면에는 마산(馬山)재건교회가 있었습니다.

   마산재건교회가 있었던 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평안북도 선천군 고성리(古星里)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선천군 동면 노하리에는 노하(路下)재건교회가 있었습니다.

   이곳의 현재 행정구역은 평안북도 선천군 로하리입니다.

   로하리는 서울로 가는 큰 길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노하재건교회의 담임교역자는 장득정(張得正)이었습니다.

 

   114 선천의재건교회들 - 로하역.jpg

   <로하역>

 

 

-  네, 오늘 해방 후에 생긴 재건교회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재건교회는 선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북한지역의 재건교회는 6․25 전쟁 당시 66개였는데 신의주구역, 선천구역, 만포구역, 평양구역,

   이렇게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선천구역에는 선천군, 정주군, 삭주군과 구성군, 박천군에 있었던 재건교회들이 속해 있었습니다.

 

   남한지역에도 재건교회 운동이 활발했습니다.

   남한지역의 재건교회 운동을 이끈 분은 최덕지(崔德智)전도사님이었습니다.

 

   114 선천의재건교회들 - 선천역.jpg

   <선천역. 선천은 교회가 활발했던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재건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었으면 합니다.

   다음 번에는 어느 교회의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함경남도 함주군 천서면에 있었던 고양리(高陽里)교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고양리교회는 지금도 교회당이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된 교회입니다.

 

 

-  교회당이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니 흥분도 되고 기대도 되네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 이 내용에 대해 수정할 것이 있다고 여겨지거나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거나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는 분은 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 찾고 싶은 교회가 있는 분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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