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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 황주읍교회(黃州邑敎會)
대담: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 ․박에스더(탈북민)

 

-  오늘은 황해도 황주읍교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황폐한 성소에 빛을’ 이 시간에 황해도에 있었던 교회를

   찾는 일은 첫 번째 순서에 황해도 장연군에 있었던 소래교회를 제외하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는 장로교와 감리교회가 선교대상지역을 나누어서 선교했다고 하셨는데

   황해도는 어느 교파의 선교구역이었나요?

 

   황해도는 미북장로회와 미감리회가 나누어서 선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황주 쪽은 미북장로회가 선교를 담당했고, 해주 쪽은 미감리회가 선교를 담당했습니다.

 

 

-  해방 이전에 황해도 지역의 기독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교회의 주류는 서북계(西北系)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서북계는 평안도와 황해도를 합해서하는 말입니다.

   ‘황평도’라고도 했지요. 황해도는 그만큼 기독교가 왕성한 곳이었습니다.
   지금 소래교회 말씀을 해 주셨는데 소래교회는 여러 번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설립된 교회이지요. 
   황해도의 교회들은 ‘이 곳은 개신교의 요람이다.’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교 초기에 황해도 지역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충돌이 많았습니다.

   신환포 교안(新換浦敎案), 우질사건(牛疾事件) 등 구체적인 일들도 있었습니다.
   황해도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 특징이 있는 것은 황해도에서 ‘조선기독교회’ 가 발생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조선기독교회는 김장호(金匠鎬)라는 목사님이 창설했는데 이 분은 원래 장로교회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아,

   출애굽 때 홍해가 갈라진 것은 모세가 바다의 밀물과 썰물 현상을 이용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근본적인 보수신학이 지배하고 있어서 김장호 목사의 이런 주장은 용인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장로교는 김장호 목사에게 휴직처분을 내렸고, 김장호 목사는 이에 반발하여 1918년에 조선기독교회를 창설했습니다. 

   황해도 지역에는 봉산을 중심으로 해서 이 교파에 속한 교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조선기독교회는 신학적 지유주의와 선교사에 대한 비판을 내세우고 동양적인 것을 강조했는데
   나중에는 친일적인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본 당국은 김장호 목사가 선교사들을 배척하는 것을 좋아해서 훈장도 수여하였습니다.

 

 

-  이제 황주읍교회 이야기를 할 차례인데요, 먼저 황주는 어떤 곳인지 알고 싶습니다.

 

   황주군은 황해도에 있는데 황해도라는 이름은 ‘황주’와 ‘해주’의 첫 글자를 딴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곳이지요.
   ‘누런 흙으로 된 넓은 평야가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황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황주는 사과로 유명한 곳이지요. 황주과수농장은 황주의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또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라는 가곡으로 잘 알려진 성불사가 황주의 정방산에 있습니다.
   성불사라는 사찰은 여러 곳에 있는데 이은상 선생은 황주의 성불사에서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북한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황해도를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로 나누었는데, 황주는 황해북도에 속합니다.

   해주는 황해남도에 속해 있습니다.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황주군 일부는 송림시가 되었고, 일부는 연탄군, 일부는 평안남도 상주군에 편입되었고,

   평안남도 중화군의 일부와 봉산군의 일부가 황주군에 편입되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황주는 경의선이 통과하고, 평양 - 개성 간 고속도로가 지납니다. 교통이 편리하지요.
   황주군에는 해방 전에는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조사한 것에 따르면 38개의 교회가 있었는데 황주읍교회는 그 가운데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0009)황주읍교회_0.jpg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황주군은 올 여름 장마에 심한 침수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다.>

 

 

-  황주읍교회는 언제 설립되었습니까?

 

   1897년에 세워졌습니다. 아주 일찍 세워진 교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봉산에 사는 김월룡(金月龍)이라는 분이 전도해서 여러 사람이 믿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개인의 집을 사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교회가 점점 부흥해서 조직을 갖추게 되고 학교도 세워 자녀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0009)황주읍교회_1.jpg

 

 

-  황주읍교회를 담임했었던 교역자들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역대 교역자들의 이름을 다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황주읍교회에 대한 자료는 의외로 빈약합니다.
   이인식(李仁植)이라는 목사님이 1917년에 황주읍교회 부목사로 부임했다는 기록을 어디서인가 보았는데

   그것을 보고 ‘아, 황주읍교회가 컸나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부목사님이 있는 교회는 몇 안 되었습니다.

   오히려 한 목사님이 여러 교회를 맡아 수고했습니다.

   황주읍교회 역대 담임자들 가운데 백승건(白承健) 목사님을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백승건 목사님은 황주 출신입니다. ‘안악사건(安岳事件)’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인 안명근(安命根)이 중심이 되어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군관학교 설립자금을 모집하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인데, 일제는 이것을 총독 암살 모의로 몰았습니다.

   백승건은 이승길 목사님과 함께 이 일에 가담해서 국민회장 책임을 맡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백승건 목사님은 1927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 분은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해방 직후까지 황주교회를 섬겼습니다.  
   백승건 목사님이 한 일 가운데 특기할만한 것은 황동노회(黃東老會)를 설립한 것입니다. 당시 황주를 비롯하여 황해도

   지역의 여러 군들에 있는 교회들이 평양노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평양노회의 영향력이 그만큼 강했지요.


   백승건 목사님이 중심이 되어 몇 분 목사님이 황동노회 설립을 추진해서

   1939년 9월에 황주읍교회에서 황동노회가 설립되었습니다.
   황동노회는  황주‧ 수안‧ 곡산‧ 신계‧ 봉산‧ 서흥‧ 평산‧ 금천의 장로교회들을 관할했습니다.
   백승건 목사님은 황동노회의 초대 부노회장, 2대 노회장을 맡았습니다.


   황동노회는 강원도 지역 전도에 힘썼습니다. 특히 감리교 선교지역인 춘천 지방에 힘써 전도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아까 선교대상지역분할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황동노회가 감리교 선교지역 전도에 힘쓴 것을 보면

   1930년대 후반에 와서는 선교대상분할지역 원칙이 많이 무너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이 공산화된 이후, 월남한 황동노회 인사들이 남한에서 1952년에 황동노회를 재건해서

   현재 장로교 합동측 안에 황동노회가 존속해 있습니다.
   해방 후 백승건 목사님은 공산정권에 협력하지 않았는데

   공산정권은 백 목사님이 황주읍교회에서 시무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결국 백 목사님은 재령의 해창(海昌)교회로 옮기셨습니다.

   공산정권은 1946년에 첫 선거를 실시하는데 선거날짜를 주일로 정했습니다. 교회는 여기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백승건 목사님은 이 주일선거를 반대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이러니 무사하기가 어려웠죠.
   백승건 목사님은 1950년 초에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순교 당했습니다.

 

 

-  황주읍교회의 위치는 어떻게 됩니까?

 

   1938년 당시 황주읍교회의 주소는 황해도 황주군 황주면 황강리(黃崗里)였습니다.
   황강리는 ‘누런 산등성이가 있는 고장’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곳의 지금 주소는 황해북도 황주군 황주읍입니다.

 

 

-  네, 오늘 황주읍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북한지역에 있었던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해방 후 그 교회와 교역자들이 박해당하고, 순교당한 이야기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도 백승건 목사님의

   순교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숙연해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 이 내용에 대해 수정할 것이 있다고 여겨지거나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거나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는 분은 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 찾고 싶은 교회가 있는 분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 ?
    둠둠바라담두 2019.02.11 19:44
    황주교회는 저희 친할머니 가족이 다니셨던 교회입니다. 이런 귀중한 자료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저 중간 흑백사진은 황주교회의 사진인가요?
  • ?
    Jubilean 2019.02.14 15:51
    관심으로 댓글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사진은 글 중간에 나오는 '안악사건' 관련 사진으로,
    황주교회와 연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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