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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목요모임 설교요약(20161013)

 

굳게 서서 마칠 때까지

 

* 본문: 여호수아314~17

* 강사: 이한길목사(사랑의교회)

 

<본문말씀>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3:14-17)

 

<설교정리>

 

하나님께서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 장군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그리고 여호수아 장군을 통해 요단강을 건너게 하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진군하도록 이끄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싯딤을 떠나 요단강에 이르렀다. 이 요단강을 건너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상황적으로 보면 모맥 거두는 시기가 되어 요단강 물이 범람하고 있었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형편이라는 말이다. 또한 200만 명 이상이 되는 수많은 백성들이 요단 강물을 보며 주저하고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의 지도자 여호수아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백성들의 믿음을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과 불가능을 잘 이겨내고 요단강을 건너는 역사를 이루었다.

 

우리에게도 삶의 순간순간마다 어려운 일들이 다가온다. 더 나아가 앞이 완전히 가로막혀서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는 답답한 일이 생길 때가 많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감당하면서도 이 일이 잘 되고 있나? 이 일이 가능한가? 의심하며 마음의 답답함을 품을 때도 있다. 넘실대는 요단강을 앞에 두고 강을 어떻게 건널까 걱정하고 근심하는 일이 우리에게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가운데 요단강 앞에 서서 두렵고 떨리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큰일을 경험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기이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첫째,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는 것이다.

 

여호수아 35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3:5)

 

요단강 앞에서 이런 명령은 시기에 맞지 않는 말씀 같기도 하다. 요단강 앞에 서서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이 강을 건널 수 있는가? 이것이 문제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듣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강을 건너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 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200만 명 이상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하는 가운데 요단강물을 바라보며 어떻게 이 강을 건널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말씀하시지 않고 그들에게 본질적인 말씀을 하셨다. “성결하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그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다. 요단강을 구체적으로 건너는 방법을 말씀해 주길 원했는데 하나님은 요단강이라는 큰 장벽을 두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스스로 성결하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가 우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가?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요단강을 앞에 두고 물어야할 더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가? 하나님 앞에 성결한가? 이것이 큰 질문이라는 것이다.

 

성결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성결은 거룩하고 깨끗한 것이다. 성결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성결이기에 하나님 앞에 합당하도록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결하도록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결에 대해서는 책임져 주는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 성결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큰일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을 먼저 영적으로 깨끗하게 준비해야 한다. 성결하게 해야 한다. 싸움을 위해 무기를 준비하거나 군사를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결하게 준비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성결하지 않으면 요단강을 건널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결하지 않은 사람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시기 위해 다 준비해 놓으셨다. 싸움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성결케 하여 준비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다.

 

사무엘상17장을 보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블레셋장수는 골리앗이다. 사무엘상174~7절에 보면, 골리앗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삼상17:4-7)

 

그의 키는 약 3m이고 그의 갑옷은 약 50km 정도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큰 사람이 전쟁을 하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한 것이다 그 덩치만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쩔쩔 메었는데 머리에는 투구, 몸에는 갑옷 등 모든 것을 갖추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골리앗의 위용 앞에 이스라엘 모든 장수들은 벌벌 떨며 두려워 숨어 버렸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이다.

 

다윗이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전쟁터에 문안을 오게 되었다. 그런데 전쟁터에 와서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때 다윗이 사울 왕에게 가서 자신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한다. 33절에서 다윗은 소년이었다고 말한다. 반면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용사였고 평생훈련을 받은 장수였다. 소년과 골리앗 장수,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울이 다윗에게 골리앗과의 싸움을 허락한다. 그리고 사울이 자기가 입었던 갑옷과 투구, 칼을 다윗에게 준다, 다윗이 옷을 입어 보니 너무 불편했고 걷기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 벗어버리고 막대기와 물매 돌 5개를 가지고 골리앗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사무엘상1747절에 보면 다윗이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아멘. 그렇다. 전쟁과 승리는 여호와께 속했다. 군대나 칼과 창이나 갑옷과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성결함이 모든 승리의 열쇠가 된다.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여호와 앞에 스스로 성결하게 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성결한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고 큰일을 행하신다.

 

노예문제로 미국 남북전쟁이 한참이었을 때, 링컨대통령의 참모 중 한 사람이 링컨대통령에게 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각하, 이 전쟁에서 하나님이 정말 우리 편에 계실까요?” 그때 링컨은 그에게 이런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신가 고민하지 말게, 우리가 하나님 편에 있는가 그것이 문제 일세하나님이 우리 편에 있는가 고민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있는가 즉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인지 고민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승리하시도록 성결한가?

우리는 토기장이가 빚은 그릇과 같은 인생이다. 어떤 이는 아주 아름답게 빚었다. 어떤 이는 조금 못생기게도 빚을 수 있다. 어떤 이는 많은 은사를 갖도록 빚으셨다. 어떤 이는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는 그릇으로 빚으셨을 수도 있다. 어떤 그릇은 금빛이 나는 것처럼 빛이 날 수도 있다. 은그릇처럼 그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 하나님은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 그 어떤 그릇이라도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 그릇이 있는데 어떤 그릇인가? 더러운 그릇, 지저분한 그릇은 쓰시지 않는다.

 

우리 인생에서 많은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도전하신다. 그것은 성결한가? 그릇은 깨끗한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어떻게 건널 수 있는가에 앞서 너희는 먼저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요단강을 건너가는 방법은, 자신을 성결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둘째, 믿음으로 순종하여 발을 내딛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싯딤을 출발하여 요단강 앞에 이르렀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기만 하면 그렇게 그리던 축복의 땅에 이르게 된다.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요단강 앞에 섰다. 그런데 그들은 요단강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실망감과 두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요단강의 형편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웠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315절을 함께 읽어보자.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3:15a)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려고 할 때는 곡식 거두려고 하는 시기로 우리 달력으로 하면 3~4월 정도이다. 이스라엘 계절로 하면 겨울인데 이때는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우기이다. 게다가 요단강의 원천인 헐몬산의 만연설이 녹아져 내리는 시기이다. 요단강의 상수원인 헐몬산이 녹아 흘러흘러 갈릴리호수가 넘치는 때도 바로 이 시기이다. 이로 인해 평소 폭이 30m도 안 되는 좁은 요단강이 이때에는 1.6km 정도로 폭도 불어나고, 수심도 3~4m 이상 깊어지고, 물살도 빨라져 14km 이상의 급류로 빨라진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시기는 물이 많고, 깊고, 물살이 강해서 노인과 어린이를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수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널 방법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강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강 물이 끊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요단강물을 건너는 방법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요단강에 발을 내딛는 것이다. 출렁이는 요단강물에 믿음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깊은 물살로 출렁이는 요단강물이 갈라지기는커녕 물살이 엄습할 것 같은 상황인데 믿음으로 들어서면 요단강물이 끊어진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흐르는 강물 속에 용감하게 발을 들여놓고 내딛는다. 그러자 믿기 어려운 기적이 일어났다. 넘실대던 요단강물이 갈라지면서 순식간에 거대한 벽을 이루고 강물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요단에서부터 아담까지의 거리는 약 24km가 된다고 한다. 왜 이렇게 넓은 공간에 물이 끊어지고 쌓여야만 했을까?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시에 건너갈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넓은 공간이 생겨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빨리 건너갈 수 있기에 하나님은 이렇게 신기한 방법으로 이 일을 이루신 것이다. 강바닥은 어떻게 되었나? 말랐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원문을 보면 바싹 말라버린 땅이라고 말씀한다. 바싹 말라버린 땅, 장마철로 물이 범람해 있는데 사막처럼 강이 바싹 말라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범람하는 요단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바싹 마른 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넘실대는 요단강물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 상황이 어렵느냐 어렵지 않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느냐 믿음으로 하지 않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요한복음11장에 보면 나사로의 부활사건이 나온다. 예수님은 부활의 구체적인 증거를 보여주신 현장에서 그 일을 행하시기 전에 마르다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믿겠습니다. 하나님, 이루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믿겠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신다. “믿으면 보리라 너의 일들 가운데 불가능하고 너희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가운데 있을지라도 나를 신뢰함으로 요단에 발을 들여 넣어라 그러면 볼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큰일을 이룰 것이다.” 넘실거리는 요단 강물에 발을 짚어 넣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의 행위이다. 기적이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기적을 일으킨다. 무언가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은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넘실대는 물속으로 용기 있게 뛰어 들어가는 것이다. 유리한 상황을 보고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뛰어 들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우리의 삶 가운데 넘실대는 요단강을 얼마나 많이 직면하고 있는가? 이때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고 요단강에 뛰어 들지 않는 한 요단강은 결코 갈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기적을 준비하고 계시지만 그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순종과 결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크신 일들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

 

셋째, 믿음으로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자동화시대에 살아가면서 빠름 빠름 빠름에 길들여져 있다. 한국 사람은 더하다. 저도 마찬가지이다. 광고도 빠름을 외치고 밥도 빨리 나와야 하고 인터넷 접속도 빨라야 하고 핸드폰도 빨라야 한다. 무엇이든 속도 경쟁이다. 빠르지 않으면 속이 탄다. 저만 그런가? 하나님께도 자동판매기와 같이 곧바로 응답해 주시길 원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철저하게 기다리고 인내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서 요단까지 이동하는데 하루는 족히 걸렸을 것이다. 요단강가에 도착한 백성들은 그곳에 진을 치고 또 3일을 기다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을 보내고 이제 그렇게 그리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기다리라고 하신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계속해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이스라엘 전체 백성에게는 기다림의 훈련이었다. 40년 광야훈련의 결과이기도 한 것 같다. 어찌 보면 잘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정탐꾼까지 보내서 그곳 상황을 파악한 후 빨리 요단강을 건너 진격해 들어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이다. 넘실대는 요단강물을 보면서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이 강을 건널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하나님의 싸인이 떨어졌다. 하나님의 인도와 명령을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잠기자 하나님의 큰일을 보게 된다. 그들은 요단강이 멈추어서 벽을 이루고 강바닥은 사막처럼 말라버린 것을 보았다. 이때부터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기다림으로 인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가운데 또 다른 믿음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본문말씀 여호수아317절을 보면,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3:17)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모든 백성이 요단강 건너가기를 마칠 때까지 굳게 서서 흔들림 없이 강바닥에 서 있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발을 내딛었고 이제 믿음으로 순종하며 요단강가운데 굳게 서서 모든 백성이 지나기까지 믿음으로 기다리고 인내하고 참고 있는 것이다. 인내한다는 것은 자기희생이다. 믿음으로 인내한다는 것은 자기죽음이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모든 백성들이 다 건너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요단강이 언제 다시 범람할지 모르는 두려움도 있다. 언약궤를 맨 어깨가 그 언약궤의 무게로 인해 고통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믿음으로 굳게 서 있다. 믿음으로 발을 내딛었을 뿐 아니라 강 한복판에 굳게 서 있다. 언제까지? 마칠 때까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모두 마칠 때까지!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부여하신 사명이다. 제사장들은 아무리 힘들고 두려워도 참아내야 한다. 참고 인내하고 자기를 희생할 때 하나님께서 큰일을 이루셨다.

 

출애굽기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아말렉 사람들과 전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전쟁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또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 모세가 산꼭대기에 서서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승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 팔이 내려왔고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이 패배했다. 아론과 훌이 안되겠다 싶어 해가 지도록 모세의 팔을 붙들어 올린다. 결국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신 것이다.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손을 들고 기도해 보았는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손을 든 사람도 손을 받쳐주는 사람도 모두 힘들다. 30분 정도 받쳐줘도 굉장히 힘들다.

 

우리 교회에서도 중보기도학교 시간에 아론과 훌 기도를 한다. 짧은 시간하지만 조금 길게 끌어도 모두 힘들어 한다. 몇 해 전에 우리교회에서 담임목사님과 손을 들고 기도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저와 부목사님이 담임목사님의 두 팔을 받쳐 들고 기도하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힘들었다. 손을 든 자나 그 손을 받쳐 든 자나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그 일이 지치고 힘이 들어도 모세는 손을 들고 있고 아론과 훌도 끝까지 함께 받치고 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인내하면서 참고 기다린 것이다. 그 기다림 가운데 하나님께서 큰일을 이루셨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승리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 하나님의 방법으로 순종하고 행해야 한다. 인내하고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신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힘이 들고 어렵고 어떤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얕은 지식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어떻게 다 판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얕은 지식으로 저것은 이해가 안된다고 고민하고 안타까워하고 애타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모습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믿음으로 인내할 때, 하나님이 이루신다. 제사장들이 요단강 한 복판에서 모든 백성들이 요단강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때에야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셨다. 만약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요단강 한복판에 굳게 서서 기다리지 않고 요단강물이 24km정도 멀리 떨어져서 벽이 쌓여 있으니까 우리가 좀 나가 있어도 괜찮겠지 하고 언약궤를 매고 자기들이 먼저 나왔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분명히 요단강은 바로 합쳐졌을 것이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데살로니가전서13절에 보면,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1:3)

 

우리도 참고 기다리며 나아가야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믿음의 여정에서 이처럼 참고 기다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오래 참음은 성령의 열매이기에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의 본성상 오래 참고 믿음으로 순종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소망이 있다. 왜 그런가? 데살로니가13절 말씀처럼 예수님 때문에 길이 참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예수님 때문에 길이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소망을 꿈꾸며 인내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믿음의 본을 보여주셨고, 기다림의 본을 보여 주셨고, 인내의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 따라 가면서 우리도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아픔, 수치와 모욕을 다 감당해 주셨다. 그 일들을 감당하실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셨다. 천군천사를 다 동원해서 모두 진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일을 행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길이 참고 인내하며 순종하셨던 것이다. 왜인가?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큰일이 무엇인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은 친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 세상은 이 일에 대해 비웃고 손가락질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내하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야고보서57절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5:7)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권고한다. 언제까지?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눈물 나고 슬프고 아픈 일이 있다. 원망과 마음의 분이 가득할 때도 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신다. 형제들아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이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고 기다리라.

예수님 때문에 기다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도 하고 비웃을 때도 있다. 예수님 때문에 참고 기다리는데 만만치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우리에게 달려드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하여 크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주님이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말씀을 마무리하겠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셨다. 어려운 시기, 어려운 나라, 어려운 교회 상황가운데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또한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하여 큰 하나님의 역사 앞에 수종들라고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셨다. 이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먼저, 자신을 쳐서 십자가에 복종시켜 하나님 앞에 스스로 성결케 되고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준비된 자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우리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까지 믿음의 발을 내딛고 시작하였으면 믿음으로 굳게 서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까지, 그 일을 마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한다.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하나님의 나라와 몸 된 교회와 이 땅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특별히 쥬빌리안으로 부르셨다. 그렇다면 이 일이 마칠 때까지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그날까지 함께 기도의 자리에서 믿음의 수고와 사랑의 수고를 하며 끝까지 기다리며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한길목사 기도

 

사랑하는 주님,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쥬빌리안으로 부르셨습니다. 주님, 언약궤를 매고 제사장들이 요단강 한복판에서 이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 성결한 자로 믿음으로 반응하며 믿음으로 순종하며 죽기까지 참고 기다리며 마칠 때까지 이 일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와 찬양

= JMM (인도: 황선훈형제)

 

1. 주님 계신 곳에 나가리

2. 주 이름 큰 능력 있도다

3. 성령이여 내 영혼을

4. 주 사랑이 나를 숨 쉬게 해

 

기도합주회 기도제목

 

1. 기도인도자

- 길이진전도사(사랑의교회 북한사랑의선교부)

 

2. 기도곡

1) 거룩한 성전에 거하시며

 

3. 기도제목

- 이 자리를 구별하여 지키며 기도하는 동역자들을 격려하며 축복합시다.

- 오늘 말씀처럼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통일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통일을 드리는 쥬빌리안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1) 남한과 북한, 한민족을 위한 기도

- 하나님, 이 땅에 복을 허락하사 부흥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는 갈등과 분열, 두려움과 불신앙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으시고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게 하옵소서.

- 예수의 보혈 의지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오니 남과 북에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시옵소서!

 

2) 남북한 성도(지하교회)들을 위한 기도

-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북한에는 지금도 목숨 걸고 신앙을 지키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있고, 남한에도 직장가운데 목숨 건 심정으로 술을 마시지 않고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 믿음의 사람들이 뿌린 순교의 피를 기억하소서. 이 땅에 예수그리스도의 의만 드러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의인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3)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찬양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통일대박과 일자리를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합니다.

- 내가 제물이 되게 하소서. 주님이 진노의 손을 드실지라도 나의 기도 때문에 거두시고 찢으신 것 싸매어 주소서. 내 삶을 통해 영향력이 확장되게 하옵소서.

 

4) 북한을 위한 기도

- 하나님은 눈물에 약하십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안됩니다. 얼마나 우리가 기도해야 하나님이 인정하겠습니까? 우리의 의를 다 내려놓고 북한 땅을 위해 기도합시다. 정치, 군사력 등 여러 논리가 있겠지만 저 땅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모르고 죽어가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 하나님 도와주소서. 지하교회 성도들을 지켜주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북한 땅에 임하게 하옵소서.

5)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기도

- 대통령 선거에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 대통령으로 세워지게 하소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정치, 경제,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이용될만한 정치, 경제, 군사력이 되게 하소서.

- 믿는 자들이 무릎 꿇을 때 하나님께서 합당한 지도자를 세우시고 통일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줄 믿습니다.

 

6) 침묵하는 가운데 각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

- 강단을 통해 통일에 대한 말씀은 선포되지 않았지만 각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기도할 때 성령의 음성이 들린 줄 믿습니다. 이 시간에 조용히 들은 말씀, 굳게 서서 마칠 때까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언행일치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610차 설교요약(20161013, 이한길목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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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N4N 2016.10.15 12:00
    요약이라기보다는 설교 원문 그대로인 듯 합니다^^ 귀한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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