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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차 서울목요모임 설교요약(20170209)

 

맹렬한 진노와 불붙는 사랑

 

* 본문: 호세아117-9

* 강사: 이상복목사(창훈대교회)

 

본문말씀

 

“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11:7-9)

 

설교정리

 

우리 교회에서 호세아서로 QT를 했는데, 우리가 한없이 부족함에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보다 우리가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풀어보고자 합니다. 교회 사역을 하다보면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선 자식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독의 문제이든,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나가는 경우, 그런 자녀를 대할 때 부모는 보통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데, 처음에는 말로 설득하고 돌아오도록 애씁니다. 하지만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문제를 일으킬 때는 매를 들게 됩니다. 사실 방법은 다르지만 마음은 같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어찌하든 올바른 길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어떤 행동인가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구약을 읽을 때 구약에서 만나는 하나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전쟁의 하나님만 같고 무섭고 심지어 잔인하기까지 할 정도로 악에 대해 즉각 심판하시는 그런 하나님으로만 알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호세아서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놀랍게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끝도 없이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한없이 품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남편 호세아를 대신해 시도 때도 없이 뛰쳐나가는 고멜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언제나 받아주라고 합니다. 호세아의 마음을 대신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결코 무섭고 단죄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내와 긍휼이 바닥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동댕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끝없이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끝없이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호세아117절의 말씀입니다. “내 백성이 끝끝내 나를 배반하고, 바알을 불러 호소하지만 그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할 것이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품으려 하지만 오히려 백성들은 그 품을 뛰쳐나가 이방신에게 자신의 원함을 풀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돌이키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말로 설득하는 것과 징계를 통해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데 여러 해 날 동안 떠돌아다니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징계를 하시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한 징계의 마음이 금세 풀어져 안타까워하십니다.

 

호세아214-15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자기 백성이 끝까지 고집을 피우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향해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달래고 타이른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의 나이며 우리입니다. 그 끝이 사망이고 죽음인 줄 모르고 끝도 없이 반항하며 세상의 욕심만을 좇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열심히 우리를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서 하나님의 품을 뛰쳐나가는 백성들을 돌이키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자기 백성을 돌이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호세아118~9절 말씀입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품에 다시 안기게 하는 것은 맹렬한 진노가 결코 아닙니다. 이 맹렬한 진노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이 있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마저도 사그라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나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없이 악하고 욕심덩어리인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요 나아가 북한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을 넘어 신약에 오면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납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격한 사랑의 표현입니까.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이름마저 함부로 부르지 못했던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직접 부르게 하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됨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친밀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얼마나 친밀한 관계였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 오히려 하나님은 철저하게 외면해 버립니다. 그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자는 바로 우리들인데, 주님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모습을 외면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히브리서1014-18절 말씀을 보면,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처럼 맹렬한 진노를 예수님께서 홀로 받으면서 영원한 속죄를 드리신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맹렬한 진노마저 넘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붙잡으셨는지, 그 십자가의 사랑을 붙잡고 오늘 북녘 땅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곧 우리가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내가 능력과 사랑이 있어서 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마치 바리새인의 행동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한, 맹렬한 진노를 넘어서는 십자가의 그 사랑으로 오늘 북한을 위해, 통일을 위해 기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7.02.09

 

627차 서울목요모임 기도제목

 

1. 본문 : 맹렬한 진노와 불붙는 사랑(11:7-9)

    강사 : 이상복목사(창훈대교회)

 

2. 기도제목

1) 선포된 말씀으로 기도

끝까지 하나님의 품을 뛰쳐나가는 백성들을 돌이키게 하는 결정적인 것은, 맹렬한 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11:8)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할 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만 노래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거룩하신 임재가운데 주의 영광을 볼 때 자신의 죄악을 보게 되고 철저하게 회개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주의 영광을 볼 때 죄악 된 인간이 감히 그 앞에 설 수가 없고 지옥의 심판에 대해 경험하게 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죄인이 죽으면 그 죄악이 그 영혼을 지옥 불로 끌고 간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적타락, 전적부패, 전적으로 무능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함을 철저히 깨닫고 지옥심판에서 건져주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할 때 우리는 영광의 주님을 지극히 경외하며 경배하게 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 한분만 두려워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여, 내 눈을 열어 주옵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으사 주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기도곡 : 우리 함께 기도해

 

2)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

말씀을 들으며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27:11)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배반을 당했습니다.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하셨으며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온갖 조롱과 수치심을 맛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빌라도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라는 질문에 네 말이 옳도다는 대답을 하십니다. 자기 백성을 결단코 부인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어렵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과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조국교회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라도 주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11:9)는 말씀처럼 재판장이신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친히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주여, 배반했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다시금 사명을 감당케 하셨듯이 한국교회 위에 주의 영을 부으시고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케 하옵소서.

기도곡 : 내 주의 보혈은

 

3) 북한을 위한 기도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20)는 말씀처럼 북한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이 붙잡고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11:8)는 말씀처럼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함께 멸망당했는데 이스라엘은 결코 그렇게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방황하는 북한 동포들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구원 받아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고 북한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회복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여, 북녘 땅의 죄악으로 인한 진노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이 불붙는 줄 믿사오니 북한 땅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기도곡 :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4) 러시아 탈북 노동자를 위한 기도

러시아에서 20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하다가 체포된 50대 탈북노동자가 강제 북송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작년 2월에 러시아가 북한과 맺은 불법체류자 수용과 송환에 관한 협정에 따라 이 탈북자를 오는 10일 북한으로 돌려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만약 북송될 경우 혹독한 고문과 인권유린을 당하고 사형될 수 있기에 인권차원에서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가 유엔 상임이사국의 위상과 역할에 맞게 북한인권 결의안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주여, 이번 결정이 향후 탈북자 북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사오니 북송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기도곡 :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627차 설교(20170209, 이상복목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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