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1차 서울목요모임 설교요약(20171005)

 

냉전과 핍박을 넘어 화해와 섬김으로

 

 

* 본문: 사도행전 26:9~20

 

* 강사: 김규남 박사 (바르샤바국립대학교)

 

 

본문말씀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설교정리

 

들어가는 말)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박해자에서 전도자로 바뀌는 모습을 봅니다. 한때는 예수님의 이름을 대적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을 잡아 가두었고, 다른 나라까지 찾아가 핍박했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죄인 중의 괴수가 주님의 강권으로 이끌려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뀝니다. 세상 사람들의 공로는 안보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만 보이는 과정과 결괍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를 회복한 바울은 이제 선교적 사명을 안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갑니다. 한때는 핍박하러 다른 나라를 갔던 이가,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러 다른 나라로 달려갑니다. 눈에 불을 켜고 분노를 안고 달려가는 사람이 아닌, 가슴에 예수의 복음을 안고 사랑의 눈으로 나아가는 칭의와 성화의 사람을 봅니다.


이 은혜가 이 자리에 모인 우리에게도 임했기 때문에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께 우리가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거겠죠. 똑같은 은혜가 북한에게도 있을 것이라 우리는 믿고 기도하러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오늘은 이 소망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오는 119일이 되면 하나님께서 독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신 지 28년이 됩니다. 오늘 제목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강력한 힘으로 냉전의 벽이 무너지고 핍박하던 사람들이 변하여 화해와 섬김의 나라가 이 한반도에 임할 것을 꿈꾸며 이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희망을 이야기하겠지만, 그 끝에는 우리가 해야 할 회개가 있을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거쳐 소망으로 가는 길엔 회개가 필수기 때문입니다.


작년 331일에 이관우 목사님의 초대로 서울 쥬빌리에서, 화해를 이루는 통일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폴란드와 독일의 역사 화해과정을 말씀 드리며 회개와 용서를 통해 화해를 이룬 모습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서론)

폴란드는 근대시기인 1795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까지 123년 동안 주변 강대국인 독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게 세 조각으로 나뉘어 식민지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123년 만에 독립한 지, 불과 21년 만에 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과 소련에게 또 둘로 나뉘어 역사상 최악의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폴란드는 인구의 1/5인 약 6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가운데 폴란드에 살던 유대인이 3백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수많은 강제노동 집단학살2 수용소에서 백 수십만 명이 가스실에서 학살당했습니다. 독립을 스스로 쟁취해 보겠다고 바르샤바 시민들이 1944년에 봉기를 일으켰지만, 두 달 만에 나치독일군에게 진압당해 융단폭격을 당했고, 수도의 건물들과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당시 폭격 뒤 상황을 바르샤바 봉기 기념관에서 영상으로 재연했는데, 짧게 넘기면서 보시겠습니다.


(영상)


비슷한 시기에 소련정권도 스탈린의 명령으로 폴란드 지도층 인사 22천여 명을 숲 속으로 끌고가 모두 총살해 암매장했습니다. 게다가 폴란드 기술자들과 시민 약 30만 명을 시베리아와 만주 연해주로 강제 이주시켜 노동착취를 했습니다. 이렇게 고통 받은 폴란드는 1945년 소련에 의해 해방되며 다시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해 국가통제 사회주의에서 반세기 동안 시련을 겪었습니다. 체제에 저항하는 교회 리더들과 시민들을 폴란드 공산당은 납치, 감금, 고문 또는 살해했고, 언론과 학문, 재산권, 집회, 종교의 자유 모두를 억압했습니다. 폴란드에서 끊임없이 노동자들과 학생, 학자들이 연대하며 자유화 운동을 벌인 끝에 동구권에서 가장 먼저 자유시민정부가 탄생했고, 이어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구권의 자유가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를 재해석하며, 정치적으로는 때로 좌충우돌하곤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하고 감사하는 이들에 의해 옳은 길로 회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일과는 역사 교과서를 공동으로 집필하며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독일 정부와 교회는 전쟁범죄 가해자들을 회개의 자리로 이끌며 정의를 세워가고 있고, 피해자들에게는 보상을 하며 신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폴란드 정부와 교회는 시민들을 용서의 자리로 이끌며, 독일인들을 용서하고 있고, 자신들이 과거 나치에 협력하며 유대인들을 괴롭혔던 죄도 함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회개와 용서가 서로 작용하는 화해 모습은 우리가 갖춰야 할 미래 통일 한반도의 모습입니다.


독일교육의 핵심은 과거 죄악과 아픔에 대한 주관홥니다. 오늘의 내 죄와 아픔으로 고백하며 다음세대에게 그 내용을 물려 줍니다. 한편 폴란드 교육의 내용은 과거 죄악에 대한 객관홥니다. 오늘의 독일과, 과거 나치의 죄악을 분리시켜 교육시킵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오늘의 독일인들을 용서하며 존중해 주고 폴란드 시민들도 자신들의 과거 잘못을 회개하며 심지어 독일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합니다


통일을, 살아있는 오늘의 소망으로 여긴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통일을 허락하셨을 때로 미리 가보겠습니다. 그때 북한의 죄악과 아픔을 통일된 한반도 우리 모두의 죄악과 아픔으로 여기는 것이 화해의 길이 될 겁니다. 북한의 자원만 우리 것으로 여기고, 북한의 죄악과 아픔은 과거 북한의 것으로 여기고 원망하고 무시하고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면, , 그때의 북한인들에게만 과거의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면, 통일 한반도에서 북한의 주민들은 그런 남한 출신 사람들을 미워할 것이고, 이류시민 취급을 당하는 열등감으로 사회는 다시 분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적 관점이 반드시 등장하게 되어 있고,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들도 표를 얻어 인기를 누릴 겁니다. 통일된 한반도에서 세상은 이럴 수 있습니다. "옛날에 그들이 그랬어" "그들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세금 더 내고 고생하는 거야" "국제사회에서도 그들 때문에 부끄럽잖아" 그러나 교회는 "그때 우리 민족이 이랬어" "우리 민족이 이제는 책임감을 갖고 회개하고 앞으로는 이래야 해"라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통일 뒤 북한의 핍박자들이 용기 있게 회개하고 겸손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신원해 주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피해자들을 화해의 자리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화해시키는 일, 또 혹시 피해자의 피해자가 나온다면 그 가해자적 피해자도 가해자로서 회개하고 상대가 또 용서할 수 있게 만드는 일. 이것이 교회의 역할이고 통일 한반도를 하나님 나라로 이루는 길일 겁니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나는 인종갈등과 정치인들의 선동적 언행을 보며 세상 사람들은 걱정을 합니다. 이때 미국의 한 인종화해운동가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피해자인 흑인을 돌보던 게 내 사명이었는데, 다시 사역을 할 수 있다면, 소외되고 가난한 백인들을 돕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이 놓칠 수 있는 사각지대와 가해자적 피해자도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분노와 비난의 세상문화를 회개의 문화로 바꾸며 사회의 화해를 이끌어야 합니다.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 여기며 기도한다면, 우리는 죄와 아픔에 대한 영적 책임을 모두 안고 기도하며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게 로마서 9장에 나온 바울의 고백과 연결됩니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오늘의 아베 총리가 굳이 과거 일본제국에 대해 회개할 필요가 없을까요? 그렇진 않죠. 우리가 민족적 책임을 일본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통일 뒤 한반도는 과거의 민족적 책임을 함께 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전 문제를 같은 민족으로서 오늘의 나의 문제로 삼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의지와 힘으로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겁니다. 통일에 딸려오는 부수적 물질적 부강함을 추구하기 보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뜻을 미리 먼저 찾아 준비한다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그날에 필요한 만큼 일용하는 양식을 허락해 주실 겁니다. 이스라엘의 희년이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면, 우리 쥬빌리 모임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양극화, 교회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의 양극화를 줄이며 해소해 나가는 기도모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이게 지난 시간까지 나눈 화해 말씀이었다면, 오늘은 섬김의 말씀으로 이어 나가겠습니다. 냉전에서 화해로 가는 이야기를 했으니, 오늘은 핍박에서 섬김으로 가는 소망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폴란드와 북한은 같은 시기에 공산당이 집권을 하며 1948년 일찍이 수교를 맺었습니다. 박헌영 외무상이 외교관계를 공식 제안했고, 폴란드가 이에 화답하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북한을 한반도의 합법정부로 인정했습니다. 같은 시기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합법정부로 인정받을 때, 폴란드는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한국 전쟁 때에는 물자를 북한에 공급하며 북침을 국제사회에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장면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유엔의 폴란드 대표단이 북한을 지지하는 발언을 매우 적극적이고 강하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19537월에 휴전협정을 맺고 난 뒤, 폴란드는 개성에서 북한측 중립국 감독위원회 국가로 참여했습니다. 같은 중립국 회원국이었던 스웨덴이 냉전 시기 대한민국과 동구권의 가교역할을 해 주었다면, 폴란드는 북한과 서방의 가교역할을 해 주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폴란드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1953년부터 1959년까지 북한의 전쟁고아 6천 여명을 키워준 나라기도 합니다. 당시 폴란드에서 양육 받은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영상)


1953년 소련의 스탈린이 죽고 후임자 후르쇼프가 스탈린의 독재를 비판한 뒤부터 동구권에는 자유의 물결이 일시적으로 일어났고,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85년 고르바초프가 등장하자 소련의 간섭이 줄어든 틈을 타 1989년 동구권은 드디어 시민혁명을 통해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스탈린이 죽은 뒤 1인 독재체제를 굳히며 다른 길을 걸었고, 고르바초프의 등장 뒤로 나라의 문을 더욱 걸어 잠갔습니다. 같은 길을 걷다가 다른 길을 걷게 된 폴란드와 북한입니다. 같은 길이라 함은 사람을 우상화했고, 주변국과 화해하지 못했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가두었으며, 연약한 사람들의 피를 땅에 적신 행윕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무시하며 핍박한 일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역사로 폴란드에서 문이 열렸고, 회복의 길이 뚫렸습니다. 폴란드에서 핍박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을 보급하며 탄생한 오픈도어 선교회는 오늘날 폴란드 오픈도어 선교회라는 이름으로 북한에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고, 2012년엔 제가 섬기던 바르샤바 한인교회와 함께 북한의 하나님 나라 회복을 위한 기도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르샤바 쥬빌리 모임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나라 폴란드가 오늘엔 핍박하는 다른 나라인 북한에 복음을 전하려는,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바울의 회심변화와 같은 이 모습은 미래 북한의 모습이 될 겁니다. 오늘의 폴란드는 독일과 화해하고 있고, 폴란드 교회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일어날 소망을 품으며, 연약한 이들을 돌보는 교회들이 계속 일어날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변화와 같은 모습입니다. 북한도, 폴란드와 시기만 다를 뿐,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는 북한에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통일의 목적은 하나님 주인 되시는 하나님 나라가 북한에 임하는 것이고,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통일의 순간 할렐루야로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공로는 없어야 하며 없을 겁니다. 세상 사람들도 보게 될 겁니다.


이사야 259읽겠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였던 우리의 변화, 바울의 변화가 모두 하나님의 강권으로 이뤄졌고 북한의 변화도 그렇게 이뤄질 겁니다. 그리고 통일 뒤의 한반도는 선교적 사명을 안고 섬기기 위해 열방으로 나아갈 겁니다. 통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통일에 대한 사명을 이루면, 그 사명이 다시 소명이 되어 열방을 향해 사명을 또 이루어 갈 겁니다. 아까 보신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지금도 폴란드를 그리워하며 폴란드에게 고마워할 겁니다. 그 고마움은 그 가족들과 후세들에게도 전해질 겁니다. 폴란드 사람들도 체제는 바뀌었지만, 당시의 교사들과 양육자들이 눈물로 그들을 그리워합니다. 이들이 다시 만나는 순간,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요. 복음으로 연결되면 가장 멋진 하나님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통일이 되면 북한의 고아들과 그 가족들, 폴란드의 교사들과 그 가족들을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은혜 입은 자들이 빚진 심정을 안고 있다면 복음으로 그 빚을 갚도록, 기도하며 준비하고 싶습니다. 핍박한 자들이 변화되어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바뀌는 순간이 될 겁니다. 저는 북한의 은혜 입은 이들이 폴란드를 복음으로 섬기는 꿈을, 제 영역에서 꿈꾸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들이 북한과 가까웠던 이란과 시리아, 리비아, 쿠바, 중국, 러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에서도 일어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지에서 지금도 이런 꿈을 꾸도록 하실 것이고, 관련된 사람들을 그분의 계획 속으로 초대하셔서 이뤄가실 겁니다.


옛날엔 비록 같은 공산권의 체제 안에서 이뤄진 물질적 주고 받음이었지만,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에게는 그게 복음의 은혜를 주고 받는 모습으로 전환될 겁니다. 성경에서 보듯이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는 그날에 보게 될 겁니다. 북한의 정치적 군사적 국제네트워크가, 복음의 네트워크로 바뀌는 일을 우리는 보게 될 겁니다. 죄가 심한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임하면 어떤 반전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말씀에서 늘 묵상해 왔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계속 만들어 주시는 쥬빌리 기도모임 해외 네트워크는 통일 뒤 이러한 섬김 네트워크의 영적 초석이 되어줄 겁니다. 한국교회가 섬기고 있는 대한민국의 탈북민들, 해외 이주민들이 훗날 통일 뒤 북한 그리스도인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열방 선교의 사명으로 초대될 지 모릅니다. 오늘의 우리가 이곳에서 모든 종족을 사랑하는 훈련을 지금부터 한다면, 쥬빌리의 기도와 열방을 섬기는 각지의 기도가 모여 통일 뒤 복음의 실체적 연결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분 좋은 소망 다음에, 문제제기를 하고자 합니다.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걸 불편해 해선 안됩니다. 그 기회를 감사해야죠. 회갭니다. 지금까지 말씀 드린 소망과 희망의 이야기에는 반드시 꼬리표처럼 달린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께 돌아가라"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물도 없습니다. 회개가 없이 이런 소망만 이야기한다면 저는 뻥쟁이가 됩니다. 회개가 없이 우리가 통일과 화해, 섬김, 회복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뻥튀기 교회와 민족이 됩니다. 회개를 건너뛰는 회개 패싱이 있으면 안됩니다. 담백하고 솔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징계와 고난상탭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회복을 요구하십니다. 회개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용서가 사람 뜻대로 안 되는 것 우리 잘 알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힘입어 성령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용서이듯이 회개도 예수님께 기대어야 합니다. 말씀 없이, 기도 없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을 빼고선 회개의 영이 임하지 않습니다. 회개해서 용서와 사랑을 경험한 이가 용서와 사랑도 할 수 있습니다. 회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죄의 용서를 경험하는 수단이기 대문입니다. 회개를 하기 위해 구원에 대한 감격과 함께 문제인식을 상세하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를 모르면 회개 못합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쥬빌리 기도에서 말씀해 주시는 회개기도 제목들을 지금까지 보다 더 신중하게 깊이 생각하며 회개하도록 합시다. 더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회개해 봅시다. 저도 그렇게 하려고 발버둥치겠습니다. 내 죄, 교회 죄, 지역공동체의 죄, 국가의 죄, 민족의 죄, 열방의 죄 모두 점검해 봅시다. , 이 죄들이 다른 이들에게 회개를 요구하는 수단이 되면 안되고, 내가 회개를 하는 죄들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1절에서 5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자기 중심적 죄가 보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제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지적하셨고, 로마서에서도 주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 지적하셨습니다. 말씀 곳곳에서 지적하십니다. 저를 더 낮아지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이 죄가 선명해 지면 선명해 질수록 회개가 깊어질 것이고, 회개가 깊어질 수록 통일의 때는 더 가까이 다가올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꼼꼼히 찾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곧 회복의 직통길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교회는 거기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영적 본질을 찾아 나섭니다. 세상이 어그러질수록, 핵실험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영적 돌파구를 찾아야 하며 회개를 통해 어그러진 걸 회복해야 합니다.


소망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선지서에 봐도 소망과 회개 징계, 소망과 징계 회개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계속 점검하시는 것 같아요. 소망의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이사야 1922절에서 25입니다. 우리 한반도가 바울의 회심처럼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변할 때, 주변국과 화해하게 되고, 우리 한중일 동북아에도 평화가 오며 회개의 중요성을 더 생활화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저는 오늘의 대한민국과 통일 한반도가 위대한 나라보단 선한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나라, 그리스도를 닮은 나라로 교회가 이끌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통일 뒤에도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 말세 최악의 유혹과 상황들이 있겠죠.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늘 하나님 나라와 말씀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기에 그 와중에도 빛으로 생명이 나타나잖아요. 세상이 지역의 갈등을 이끌지라도, 성도는 한중일 교회들의 회복과 동북아 지역사회와 정부 사이 화해를 꿈꾸면서 통일을 기도해도 될 겁니다. 대신 인간의 지혜를 의지해서 이런 걸 소망하진 말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로 다음 이사야 205절과 6입니다. 지금도 그렇고 통일 뒤에도 하나님 외에 다른 힘을 의지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죠. 하나님 의지 안하고 또 사람의 지혜, 모략으로 싸우고 견제했다간 통일해 봤자 또 분열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일까요? 통일 뒤 군사력 더 강해지고 부자 되고 자원 많아지고 자랑하다가 큰 코 다칠 것까지 미리 경계합시다. 교만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통일 되면 더 겸손해지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더 의지하는 한반도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얻은 통일인데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뒤 광야생활을 합니다. 통일 뒤에 한반도 전체가 자유를 얻은 뒤에도 광야와 같은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재 뿌리는 소리냐고요. 바울도 회심 뒤 고난과 핍박을 늘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복음으로 회심 뒤에는 고난과 핍박이 따라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기나긴 통일 준비 과정이 광야의 시간으로써, 회개하고 낮아지는 시간으로 우리가 더 배우고 섬길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통일 뒤 광야는 당황스런 광야가 되지 않을 겁니다. 통일 뒤 이미 북한에 자생하여 자리잡은 이단들과 맞서야 할 거고, 북한에 임할 물질주의, 맘몬주의의 악령과 맞서야 할 거고, 주체사상의 잔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데 방해가 될 거고, 그래서 여기 저기 자기 식대로 믿는 내가 복음이 나올 거고, 세상가치적 언행들로 북한 주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일이 부지기 수로 많을 겁니다.


베드로전서 216에 보면, 자유인으로 살되 그 자유를 악행의 구실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북한에 자유가 오는 것이 또 다른 악행의 구실이 되지 않도록 오히려 하나님의 종으로서 세상적 가치의 속박에서 벗어난 올바른 자유의식을 갖도록 교회가 준비해야 합니다. 교회가 물질적 세상과 맞서는 과정이 있을 겁니다. 이게 통일 뒤의 광야가 될 겁니다. 그러나 오늘의 분단 광야를 어떻게 성숙되게 보내냐에 따라 통일 뒤의 광야를 기쁘게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겁니다.


신명기 8(2, 16-18) 가운데 몇 절 제가 읽어드리며 점검해 보겠습니다. 예수님만 드러나고, 나는 낮아지는 회개. 그래서 회개가 광야를 이기는 힘을 기르는 길입니다. 소망을 생각할수록 회개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회개한 사람이 소망을 더 가치 있게 누릴 겁니다. 마가복음 115절에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좋은 소식, 소망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죄, 대한민국 교회와 사회의 죄를 더 찾아서 고쳐야 우리가 살겠죠. 소망을 생각할수록, 회개의 책임이 더 커집니다.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앞서 나의 중심성과 자만을 먼저 회개해야겠죠. 그래서 저는 더 낮아지고 싶습니다. 더 깨지고 싶습니다. 내 안의 더 큰 괴수 중의 괴수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섬길 수 있습니다.


결론)

의료선교사였던 서서평 선교사님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사역과 선교는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우리는 선교적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의 통일은 선교적 통일이어야 합니다. 통일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통일의 목적은 잘 살기 위한 세상적 성공이 아니라, 열방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위대한 나라가 아닌 그리스도를 닮은 선한 나라. 선한 사마리아인이 많은 나라. 그 섬김을 위해 우리는 더 낮아져야 합니다. 그 낮아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회개에 있습니다.


지금이 준비시키시는 땝니다. 저는 쥬빌리 기도모임이 회개의 문화를 이끌며 통일을 준비하는 공동체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가 공로의식을 가진 회개가 아니라, 즉 우리가 회개해서 통일이 이뤄진 게 아니라, 무익한 종인 우리가 그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이루는 회개가 되길 소망합니다. 속박에서 자유로, 냉전에서 화해로, 핍박에서 섬김으로, 속박과 냉전, 핍박에서 자유와 화해, 섬김으로. 그 길목엔 회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보일 때까지 더 회개하겠습니다, 주님. 낮아지고 싶습니다. 이 마음 품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가 회개의 문화를 이끌며 통일을 이루어내는 기도회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북한을 위한 기도가 널리 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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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창 2017.10.06 00:30
    설교내용을 거의 생략하지 않고 전문을 올려드립니다. 은혜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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