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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9차 서울목요모임 설교요약(20171130)

 


"낙심을 넘어 소명으로"

 

 

* 본문: 왕상 19:1~16

 

* 강사: 박인기 목사  

 

 

본문말씀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서론)

보이지 않는 것에 눈뜨다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마귀가 중고 물건을 경매하고 있었습니다. 탁자 위에는 성도들을 죄에 빠지게 하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탐욕, 음란, 분노, 시기, 질투, 미움, 교만 등 여러 가지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가격표가 있었습니다. 꽤 높은 가격들이 있었지만 가장 비싼 물건은 따로 있었습니다. 탁자 한 모퉁이에 평범하고 볼품 없어 보이는 물건이었습니다

 

어떤 손님이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요? 왜 이렇게 비싼 겁니까?

사탄이 말했습니다. “아 그거 말씀이군요. 이건 제가 가자 소중하게 여기는 겁니다. 여기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쓸모가 있는 도구이기도 하구요. 시기와 탐욕과 나태와 정욕이 성도들을 꺽지 못할 때 이 녀석 하나면 모든 것이 끝나지요. 솔직히 말해서 이 탁자 위에 있는 모든 도구들로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린 숫자보다 이 놈 하나로 넘어뜨린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이름이 뭡니까?”, “네 그건 낙심이란 물건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한번씩 좌절과 낙심 가운데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낙심 가운데 빠질 때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특히 소명이나 하나님의 꿈을 갖고 살아가는 성도에게는 더 치명적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낙심에는 나가 떨어지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에도 그런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너무나 위대한 영적 거장입니다. 수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며, 심지어 죽은 이를 살리기도 하였습니다. 갈멜산에서는 일당 백이 아닌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과의 영적 전투에서 하늘로부터 불이 내림을 통해 승리합니다. 갈멜산의 승리는 완벽하였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엘리야입니다. 아마 엘리야는 이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에서 우상 숭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다시 여호와 신앙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란 벅찬 기대감에 차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곧 낙심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4절에 보 면은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을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너무 낙심한 나머지 생명까지 포기한 듯합니다. 절망입니다. 하지만 이장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일어나서 자기의 소명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어떻게 낙심의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낙심을 이기는 방법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첫 번째 주의 일인가 나의 사역인가를 알아야합니다.

엘리야가 낙심하게 되었던 원인은 이세벨 때문입니다. 2절에 보면 이세벨이 자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 맘 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이 말에 깊은 실의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읽었던 것처럼 깊은 낙심에 빠져 죽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의 어느 굴에 있는 엘리야에게 너가 어찌 여기 있느냐라고 물으실 때 이 때의 대답도 같은 맥락입니다. 10절에 보면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정말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 했습니다. 외부적인 상황을 보면 엘리야의 반응은 이상한 것이 하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문장의 흐름이 좀 이상합니다. “즉 엘리야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내가 주의 일에 대해서 열심히 있습니다. 내가 주의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란 뉘앙스입니다. 모든 초점이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닌 자기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엘리야 자신이 실패하면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실패한다는 의미입니다. 근는 하나님의 사역의 도구이지 그가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에게 모든 주도권이 있으며 자기의 모습에 따라 하나님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다고 착각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감당하며 낙심할 때 많은 부분에 속합니다. 사역의 중심에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역을 하면서 자주 자주 내가 하는 것이 주의 일인가 나의 사역인가를 잘 평가해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를 통해 일하시지만 그럼에도 모든 사역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 얼마 전 전도현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도팀과 함께 전도를 나가서 열심히 노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어떤 팀은 몇 명 복음 전도에 몇 명 결신, 몇 명 복음 전도에 몇 명 결신, 그런데 한 팀이 올라와서 풀이 죽어 말합니다. 5명 복음 전도에 결신 0. 그 팀은 복음 전도에 이은 결신까지 자신의 사역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나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영역이며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보지만 열왕기하 19장에는 정반대의 모습이 나옵니다. 히스기야 왕 때 북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앗수르의 산헤립이 군사 십팔만 오천명을 끌고 쳐들어 옵니다. 히스기야는 일국의 왕으로 나라를 지켜내야 함에도 막아내거나 물리칠 힘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럴 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곧 응답하십니다.

 

29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5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만약 앗수르와 맞서는 전쟁이 그의 사역이었다면 그는 절망해야 합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자기의 사역이 아닌 하나님의 일임을 고백하며 인정할 때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십니다.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지금 낙심하고 있습니까? 점검해 보십시오. 나의 사역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지.

 

두 번째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두려움은 자기의 생명을 찾는 악녀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의 칼이 너무 무섭습니다. 그래서 10절에서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빼앗으려 하나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본문의 내용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13, 14절에 동일한 내용이 반복됩니다.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습니다. 그 사이에 11, 12절이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 가운데서 바위를 부숩니다. 또한 지진이 있어 온 천지를 뒤 흔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삼켜 버릴 듯한 뜨거운 불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미한 음성이 따라 옵니다. 왜 이런 모습을 보였을까요? 분명 여호와 앞에 서라고 하셨으면서... 바로 말씀하시지... 그런데 이 장면 뒤에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뭔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엘리야가 여기 있는 이유는 이세벨이 무섭고 그녀의 칼날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비록 엘리야가 8절에서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almighty God”이라고 표현하지만 그의 행동에서는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네가 만군의 하나님, 전능하다고 고백하는 나의 모습을 잘 봐. "엘리야 나의 능력이 어떤지 잘 봐라." 바람을 통해 산을 다 갈라버립니다. 지진을 통해 지축을 대지가 흔드리는 것을 봅니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을 통해 모든 것을 불사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세벨에게 움추려 들거나 뒤지는 분이 아님을 경험을 통해 알게하십니다. 바람을 통해 이세벨을 지켜주는 강력한 성을 부슬 수 있는 분입니다. 지진을 통해 그의 든든한 왕좌를 흔들어 무더트릴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강렬한 불로 이세벨 군대의 칼날을 녹일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나의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그 하나님을 다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낙심하게 만드는 그 요인이, 그 상황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마치 엘리야 앞의 이세벨처럼. 그런데 나의 두려움과 낙심 가운데 하나님도 같이 가두어버립니다. 내가 경험한 실패 속에 좌절 속에 하나님의 능력도 제한되어집니다.

 

어제 한동안 잠잠하던 미국이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오늘 영상에 공개된 내용을 보면서 전문가들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며 정말 큰 신형 엔진 미사일이라고 분석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더 미궁으로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김정일이 너무 크고 강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만군의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죽음의 권세까지 깨뜨리신 주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은 소명의 재확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세우시며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15절부터 16절입니다.

다메섹에서 아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으로 세웠고,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으며,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19절의 엘리야의 반응입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던 엘리야에게 그가 해야 할 일들을 다시 선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이 소명은 엘리야를 다시 자신의 자리에 설수 있게 합니다. 소명이 불분명할 때는 낙심하지만 소명이 분명한 사람은 힘은 들 수 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낙심 가운데 있더라도 다시 나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결론) 

이런 소명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어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왜 그래요. 세상의 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에요. 시끄럽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그럴 때 소명은 선명해집니다. 상황이 희미하고 잘 보이지 않았던 사람을 말하라며 언더우드를 꼽을 수 있습니다.

 

1885, 미 북장로교와 감리교에서 파송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머나먼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경유한 후 부산을 거쳐 45일 부활주일 아침, 두 선교사는 제물포항(인천)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굳은 각오로 도착했지만 열악하기만 한 환경과 사람들의 차가운 대응은 선교사들은 무척 곤혹스러럽게 했습니다.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에서 그가 느껴야 했던 답답함을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기도하며 그의 마음을 더욱 주님께 집중하며 소명을 선명하게 붙듭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이곳 조선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조선의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분명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신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자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이곳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아멘."                                              

                                                                                -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 중

 

그리고 선교 130년이 흐른 후 그 캄캄하고 암담하기만 했던 조선 땅은 복음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밤이 되면 깜깜한 서울 시내에 수 많은 십자가가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합니다. 기도문에 나오는 것처럼 낙심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암담한 상황 앞에서 하나님께 집중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무엇이 나를 낙심하게 합니까? 낙심하게 만드는 환경은 무엇입니까? 나의 사역인지 하나님의 일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또한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것보다 크신 분임을 날마다 고백합시다. 아무리 높은 산이 있다하더라도 예수 산을 옮기시는 분이심을 고백합시다. 그러기에 기도하며 끝까지 소명을 붙들고 나아갑시다. 조선이 그러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하나님의 꿈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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